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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26. 2017

Cafe 메소포타미아

11. 스쳐간 인연을 복기하다

아이셀은 집에서 가장 큰 안방을 내게 내줬다. 그녀는 작은 방에서 자고, 아들들은 거실에 이불을 깔고 지냈다. 그녀의 집에서 지내면서 나는 아침을 먹고 난 뒤 큰 도로를 다니는 버스를 타고 마르딘으로 올라갔다. 마르딘에서 낮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오피스마할리시로 내려오는 생활을 했다. 


아이셀의 아들인 아흐멧은 엄마가 시켜서인지, 내가 걱정되어서인지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리고 가서 내가 버스를 잘 타는지 꼭 확인한 뒤에 집에 들어갔다. 오피스마할리시같은 깡촌에 살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조숙한 구석이 있던 아흐멧의 책상 위에는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 있었다. 


내가 터키에 오기 전 어떤 곳인지 확인하기 위해 읽었던 이 책은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이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된 오르한 파묵의 자전 에세이다. 그의 눈에 비친 이스탄불의 의미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그가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로 꼽은 것은 '비애'였다.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다른 물건들을 얻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폐허를 보기 위해 나는 그곳에서 멀어져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스탄불에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17세 소년 아흐멧은, 이렇게 책으로 이스탄불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나는 마르딘 시내에 있는 작은 서점에 가서 그에게 오르한 파묵의 '눈'을 마지막 선물로 사다주었다. 



아흐멧의 배웅을 받고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올라간 마르딘에서, 나는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좋은 카페를 서칭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 중 하나다. 여행자에게 카페란 공짜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휴게소 같은 공간이 아닌가. 마르딘에서도 나는 가장 먼저 카페를 찾았다. 


좁고 어두운 입구가 호기심을 자아내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차이 한 잔을 시키고 2층으로 올라가니 루프탑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었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입체감 없는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져있었다. 


카페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짐을 꾸려 후다닥 떠나온 이곳에서, 나는 내 삶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들의 삶의 이유를 수집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라고 착각했던 자유라는 가치를 되찾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었고, 지나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마약이나 범죄에 빠진 친구들에게 '우리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산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져, 평생을 이 도시와 연애하기 위해 모국을 버린 남자도 있었다.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크고작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면서도 나는 간혹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양한 삶들을 보면서 나의 고민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나를 다독였다.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역치가 다른 법이라고, 남들이 더 힘든 상황들을 직면하면서도 살아간다고 해서 내가 유약한 것이 아니라고.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가져다 준 차이에, 각설탕 하나를 녹여 호호 불어 마시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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