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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26. 2017

에메랄드빛 믿음

12. 아브라함 설화 속 성지, 산르우르파

마르딘 오피스마할리시 사람들과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고 마을을 떠나왔다. 아이셀에게는 마르딘에서 산 화려한 스카프를, 아이셀의 큰아들 아흐멧에게는 오르한 파묵의 책을, 둘째아들 오스만에게는 여행을 떠날 때 가지고 온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에멜리에게는, 탈출을 할 때 조금이라도 자금으로 보태라고 내가 가진 현금의 일부를 주고 나왔다. 내가 버스에 타기 직전까지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던 에멜리는, 그럼 꼭 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버스에 오르자 눈물이 쏟아졌다. 꼭 다시 와야 한다고, 주소와 번호를 적어주며 포옹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들에게 5년 안에 다시 오겠다고 말을 했지만 못 지키리라는 것을 서로가 알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이 보여준 호의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수줍게 다가와 내 손에 무화과나 석류 같은 과일들을 쥐어주고 도망가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마르딘 버스정류장에서 '산르우르파'로 가는 큰 오토가르(버스)를 잡아타고 산르우르파에 도착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그 뿌리를 같이하기 때문에, 이슬람 신화 속에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산르우르파는 바로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도시다. 


이 도시에 얽힌 설화는 이렇다. 이방인에게 잡혀 포박을 당한 아브라함에게 적들은 "신을 거부하면 살려주고, 거부하지 않으면 장작에 올리고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아브라함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불을 붙여라!"고 외친다. 이방인들이 횃불을 장작에 갖다대는데, 순간 불이 물로 변하고 장작은 물고기들로 변했다. 


이 물고기들이 대대손손 번식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 지역에 얽힌 설화다. 산르우르파의 명물, 잉어 연못에 얽힌 설화다. 아브라함은 이슬람에서도 성자 중의 성자다. 이들은 그를 기리는 아름다운 모스크를 지어두고 한가운데 조성한 에메랄드빛 연못에 잉어들을 소중하게 길러왔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성스러웠다. 그들의 기도와 눈빛 속에 담긴 평화는 종교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 믿음 안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런 사연이 얽혀있는 종교적 성지인 산르우르파인 만큼, 종교적 규율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엄격했다. 모스크에 들어갈 때 다른 지역에서보다 머리를 더 꼼꼼하게 스카프로 가려야 했다. 팔뚝보다 굵은 잉어들을 바라보며 옆에 앉은 꼬마에게 잡아먹는 시늉을 했더니, 꼬마가 화들짝 놀라며 안된다고 손을 내젓기도 했다. 


꼬마아이 놀리기를 멈추고 잠시 한적한 카페를 찾아 앉아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국인 아니세요?"하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한 명 보이지 않았던 산르우르파에서,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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