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처녀 Mar 18. 2017

자유의 대가 (2)

9. 포기할 수 없었던 자유를 향한 열망


탈출에 실패한 에멜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이들이 그녀의 포기를 막았다. 7살이나 됐지만,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작은 체구의 큰아들. 그리고 철없는 말썽꾸러기인 4살의 어린 딸. 영양제 하나 없이 두 아이를 희망이 없는 오피스마할리시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자유를 향한 열망만큼 간절했다.


그녀가 찾는 자유는 본인만의 자유가 아니었다. 어린 두 자식의 자유이기도 했다. 고기 한 번 먹기 힘든 가난한 이곳에는 영양뿐만 아니라 문화와 교육도 결핍돼있었다. 황량한 공터에서 낡아서 솜이 삐져나온 작은 축구공을 차면서 'TV에 나오는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들 소즈닷. TV에 나오는 바비인형 광고를 볼 때마다 갖고 싶다고 우는 앨리사.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지출을 하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생활 속에서, 그녀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버스가 쌩쌩 달리는 큰 도로 맞은편에서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는 소즈닷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길이 위험하다고, 육교를 놔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왔지만, 지방정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을의 예쁜 여자아이 하나가 학교에 가던 중 차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뭉개진 채 병원에 실려 갔다.


상태는 호전됐지만 아이는 실어증에 빠졌고, 그 사건이 있고 나서야 육교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차가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도로를 무단 횡단한다. 에멜리는 개구쟁이 소즈닷도 사고의 희생자가 될까 두려워했다.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나는 히잡을 쓰지 않아. 내 나름대로 현실에 저항하는 방식이야.


그녀는 이곳의 남자들이 다 싫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깍듯하고, 아내를 포함한 여성을 벌레 취급하는 권위적인 여성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가 뭘 하려고 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녀는 그런 이유로 이곳의 남자들을 혐오했고, 소즈닷이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고 성장해 비슷한 남자가 될까 두려워했다. 첫 임신 후 의사로부터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은 뒤, 그녀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너무 사랑하는 아이들은 그녀의 탈출에는 걸림돌이다. '천국 문을 지키는 천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딸 앨리사. 그녀는 이름과 달리 대부분의 시간 '꼬마 악마'가 된다. 시장에 가면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고, 사지도 않은 견과류와 사탕들을 입에 쏙 집어넣고 모른체 한다. 엄마가 물건을 사려고 시장 구경을 하고 있으면 엄마 손을 몰래 놓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에멜리는 아이들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유를 갈망하는 아가씨였지만, 동시에 엄마였다.



에멜리는 내가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쯤 뒤, 오피스마할리시를 탈출해 독일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연락이 끊기지 않았던 그녀의 오랜 독일 친구들은 그녀의 탈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에멜리는 지금은 독일의 한 중소도시에 자리잡고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의 대가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