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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18. 2017

자유의 대가 (1)

8. 빼앗긴 자유를 되찾는 여정

그녀의 손목에는 세 개의 칼자국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생긴 상처는 8개월 전이라고 했다. "I hate my life in here." 터키의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던 오피스마할리시에서 어설픈 여행자인 나를 구원한, 유일한 영어 사용자였던 에멜리는 그렇게 그곳에서의 삶을 증오하고 있었다.


쿠르드족이 사는 한 시골 마을에서 수십 명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당황해하고 있을 때, 에멜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다며 그녀는 수줍은 목소리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답이 필요한 모든 질문을 쏟아낸 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서 수준 높은 영어를 배울 수 있었냐고.


27살이었던 에멜리는 17살때까지 독일에 살았다고 말했다. 아르메니아계 이민자였던 이들은 아버지가 이탈리아로 도망가고 집이 망하면서, 엄마와 네 아이가 함께 고향인 오피스마할리시로 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나를 반겼던 것처럼 환영했고 방을 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이들의 호의에 순전히 호의라고만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녹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와 네 자녀. 무일푼이었던 이들이 정착하기 위해선 정착금이 필요했고, 큰돈을 벌기 위해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딸들이 결혼해 지참금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큰언니가 먼저 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갔고, 둘째인 에멜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사촌뻘이었던 한 청년을 지목하며 그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다.


그 청년을 본 순간 깨달았어. 저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결혼을 거부했다. 에멜리의 엄마는 결혼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딸에게 화가 나서 그녀를 향해 컵을 던지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흉보기 시작했다. 처지도 모르고 나댄다고 비난했다. 그래도 버텨야 했다. 남자는 그녀의 집으로 예물 반지를 보내왔지만, 그녀는 그 반지를 돌려보내며 완강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날 밤, 남자는 그녀를 납치했다.


길에서 몇 명의 남자들에게 납치당한 그녀는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것이 그녀의 결혼식이 되었다. 에멜리는 손을 떨며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공포가 생생한 듯 그녀는 두려워했다.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쏙 빼닮은 아들이 미워 못된 엄마가 되었다. 아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지만, 아버지를 닮은 남자가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러한 폭력이 먼 나라 이야기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였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며 지극히 평범한 선진국 청소년으로 자란 그녀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보편적인 것이라 배웠고, 그것이 보장되는 삶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독일에선 이주민이었지만 의식주와 교육 같은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나와 똑같은, 어쩌면 더 진보한 사회에서 살던 그녀였다. 명예살인, 히잡, 지참금, 여자를 노예 취급하며 일하지 않는 남자들.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였다. 한창 미래를 꿈꾸고 준비해나가던 17살,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기에도 이른 나이에 그녀는 납치당해 친척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그래도 벌써 10년이 지났잖아. 아이들도 이렇게 컸고. 아직도 남편이 용서가 안 되니?"


내가 물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올해로 딱 10년이 된 이곳에서의 생활. 그녀는 이곳을 떠나 자유를 찾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스탄불에 자신같은 상황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들을 위한 센터가 있다며 그곳에 찾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일단 여기까지 찾아와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몇달 전, 병원에 가겠다고 말한 뒤 두 아이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한시간 반 거리인 디아르바키로 도망을 가 비행기편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10년을 오피스마할리시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낯선 땅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패닉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 계획한 만큼, 실패한 뒤 그녀의 마음은 가문 땅처럼 갈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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