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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18. 2017

그늘이 된 마을

7. 빛의 도시 마르딘의 외곽 마을, 오피스마할리시

마르딘에 가던 중 아주머니의 초대를 받아 따라간 곳은 터키 동남부 마르딘이라는 유명한 도시 인근의 작은 마을 오피스마할리시였다. 


마르딘은 옛 시리아 문명의 흔적,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터키인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마르딘을 중심으로 난 도로들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형성돼있는데, 그녀가 사는 오피스마할리시도 그런 동네 중 하나였다. 


마을 어귀 슈퍼마켓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이셀의 집이 나온다. 더 걸어 들어가면 공터가 나오는데, 이 공터에서 바라보는 마르딘은 낮이면 태양 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반면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들로 치장해 매우 부유한 동네처럼 보인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오피스마할리시는 마르딘의 그늘이었다. 


마르딘까지 가기 위해서는 도로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야 했다.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가로질러 마르딘에 가닿는 4차선 도로에는 갓길도, 횡단보도도 없었다. 아이들은 마르딘에 있는 학교에 가다가 차에 치여 죽거나, 장애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아이들은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마당에서 낡은 공을 찼다. "터키가 축구를 잘 해. 쟤네 꿈은 축구선수야." 아이셀이 말했다. 



아이셀을 따라 골목 어귀로 들어가자 커다란 터키 카펫이 지붕 위에서 햇살에 몸을 말리는 낡은 벽돌집이 나왔다.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외치자 집에서 나온 두 명의 소년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엄마의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동생인 듯 보이는 소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카펫을 돌돌 말아서 내려왔다. 아이셀은 엄청난 카리스마로 아이들에게 손가락으로 일을 지시했고, 아들들은 엄마의 명령에 따르는 재미난 풍경이 펼쳐졌다. 모계사회가 현존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바람이 나서 도시로 떠났다고 했다.


그녀의 아들들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셰는 햇볕에 말린 카펫 위에 앉더니 석류를 하나 까서 숟가락과 함께 나에게 건넸다. 바깥의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는데 에어컨도 없는 집안은 동굴처럼 서늘했다. 이웃사촌인 듯한 예쁜 젊은 여성 하나가 '툴리'라는 이름의, 볼이 통통한 아기를 데려오더니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셀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나에게 휴대폰을 주며 "헬로"라고 인사하라고 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인사를 마치고 30분쯤 지나자 갑자기 집에 한명 두명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셀 집의 거실을 사람들이 가득 메웠고, 이들은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셀의 두 아들, 아흐멧과 오스만 중 형인 아흐멧이 작은 영어사전을 가지고 나오더니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영어사전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여행 터키어로 외워온 몇 가지 표현 중 하나, "안라므요룸"으로 답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활짝 웃었다. 그들이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충분히 전해졌다. 


알고보니 '나를 믿고 따르라'고 했던 아이셀의 영어는 매우, 정말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마르딘에 몇 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느냐, 몇 시에 끊기냐 같은 기초적인 질문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스마트폰 인터넷도 멈추고 아이셀의 집 컴퓨터 인터넷은 웹페이지 하나를 여는 데 10분이나 걸릴 정도로 느렸다. 


너무 반가운 만남이었지만 여기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에멜리가 구세주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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