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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12. 2017

퀴축 아야소피아

3. 토끼 주인장이 반기는 모스크 찻집


터키의 커피하우스는 여자들의 공간이 아니다. 나야 외국인 여성이니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고, 테이블에서 글을 쓰곤 했지만 커피하우스에서 아침마다 차이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커피를 마시다보면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들이 작은 유리잔으로 커피를 마시며 곁눈질로 쳐다본다. "메르하바" 인사를 건네면 수줍게 웃고 다른 곳을 쳐다본다.      


이스탄불 술탄아흐멧지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던 퀴축 아야소피아. 작은 아야소피아라는 뜻을 가진 작은 예배당 정원에 딸린 작은 커피하우스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오리, 토끼, 고양이와 사람이 공생하는 이 작은 공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경계 없이 대하며 자연스레 구성원들 간의 조화를 이룬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차이를 마시고 물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이들이 아침을 여는 방식이다. 


메뉴는 단촐하다. 차이, 애플티 그리고 터키시 커피. 터키시 커피는 주걱같이 생긴 작은 냄비에 곱디곱게 간 커피 가루와 물을 거의 1:1 비율로 넣고 화덕 위에 얹어 끓여낸, 진한 커피. 드리퍼, 모카포트, 에스프레소 머신 등 어떤 기구를 사용하든 커피는 곱게 간 뒤 우려내는 방식이지 직접 그 알갱이를 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터키 커피는 커피알을 직접 갈아 마신다. 작은 로쿰이나 초콜릿과 함께.      

오래도록 이곳에서 지내며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마른 노인이 주문을 받는다. 각 메뉴는 대개 1~2TL 정도다. 노인은 내가 외국인에게 분명 생소할 '터키시 커피'를 시키니 말리려는 듯,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어를 하더니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고 양 손을 벌려 '진짜'냐는 제스처를 한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옆 테이블 젊은이들이 피우는 물담배 '시샤'의 체리향 연기가 연기가 코를 간질였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아침에 만난 호스텔 장기 투숙자와의 대화를 생각했다. 5주째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다는, 30대 중반의 남자. 그는 한국에 안 들어간 지 벌써 5년이 됐다고 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여행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 여행의 목적이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비싼 투어를 해 봤지만 그것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근사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좋았다는 것이다. 유명한 것들을 꼭 봐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훨씬 더 자유로워졌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좀 더 많은 것이 보였다고 했다.      

내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고독이 아니었을까. 머리로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터키에 도착한 지 사흘째가 되도록 나는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곳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말을 섞은 사람과의 동행도 거절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보면서, 익숙한 모든 것을 잊기를 바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위적인 고독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삶이든 여행이든, 이 공간을 채운 사람들은 이리저리 엮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홀로 철저히 이방인이라고 느끼자 자신감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나의 감각들은 점차 깨어나고 있었다. 내면에 침잠해있던 나의 오감은 갑자기 달려드는 개, '자폰! 차이니즈!'를 외치며 윙크를 해 대는 길거리의 상인들, 그리고 낯선 언어 사이에서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이 여행을 하며 바뀌었다는 장기 투숙자처럼, 내 여행의 목적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낯선 맛의 커피를 마시며, 작은 풀꽃들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정원을 감상하며 생각했다. 마당을 뛰놀던 흰 토끼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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