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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 Aug 21. 2018

소외된 연애

나라 꼴이 이모양 이꼴인데 연애는 무슨.

영일, 친하게 지내자 - 레진코믹스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쓰고 있다. 뮤즈, 야구, 이슈리, 마케팅, 노래까지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 쓰다가 이 다음엔 뭘 써야되나 싶었다. 내가 또 좋아하는 게 있었나?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연애가 있었다. 연애 좋지. 밥도 벌어먹고, 행복도 하고, 인생에 활력소가 되는 것. 연애 괜찮아.  


스무살이 넘어서 몇 번의 연애를 했다. 연애라고 치는 것들을 세어보면 총 여섯 번, 내가 연애라고 부르는 연애는 네 번이었다. 못해도 사계절은 같이 지내야 연애라고 생각하는 내게 두 번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었다. 그래서 몇 번의 연애를 했냐고 물어보면 늘 네 번이라고 그랬다. 거기에 끼지 못한 둘에겐 미안한 일이다. 물론 사귀지 않은 건 아닌데.. 연애는 아니었다. 늘 연애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그 둘에 대해서 쏙 빼놓고 쓰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둘에 대해서 좀 써보려고, 서운해할 것 같아서.




소외된 첫번째 사람은 스무살 넘어 처음으로 연애를 했던 오빠였다. 한살이 많았고, 늘 남보다 본인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 단점을 나를 만나면서 조금 고쳐지는 듯 싶더니, 그건 나 한정이었고, 결국 헤어지고 나서는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전해들었다.


신입생 OT 때 처음 만난 오빠는 뭔가 달랐다. (콩깍지) 똑똑해보였고, 대단해보였고, 있어보였다. (뭐 대단한게 있었겠냐)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과 더불어 새로운 환경에 휘날리던 마음이 그냥 그랬다. 얘랑 사귀고 싶었다. 이겨먹고 싶어하는 성격은 여기서부터 였던 듯싶다. 게다가 4월에 군대를 간다길래 더 불타올랐다. 원래 하지 말란거 하고 싶으면 더 하고 싶잖아. 그래서 사귀자마자 군대를 보냈다. 진주시 금산면 속산리로.


대단한 연애도 아니었다. 사귀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났었다. 학교에서, 인천에서, 분당에서. 지금은 엄두도 못낼 인천-분당 연애를, 그것도 차도 없이 했다. 짧은 기간이었으니까 가능했다. 서로 열심히 꼬시느라 바빴다. 하루종일 문자를 했고, 저녁에는 달달하게 전화를 나눴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눈물로 인사를 했다. 훈련소 휴가를 나왔을 때는 인천까지 마중을 나갔다.


일말상초도 아니고 이말일초 때 이별을 했다. 이유는 뻔했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악필로 적은 마지막 편지엔 "매일 7시가 되면 하늘을 봐줘. 네가 보는 하늘, 내가 보는 하늘, 다 같은 하늘이잖아. 같은 시간에 같은 하늘을 보자"라는 멘트를 날렸었다. 오... 간지럽고 오글거리는데. 그때 딱 느꼈다. 아, 내가 얘를 이제 안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헤어졌다. 오후 11시에 부재중 통화가 5통이 넘게 찍힌 것을 보고 소름끼쳤다. 얘가 이런 애였나..? 원래 이기적인 줄 알았던 애가 사랑을 하면 이렇게 하나? 무서운 사랑이네, 하고 헤어졌다.




두번째 오빠는 소개팅에서 만난 오빠였다. 첫 만남에서 놀랐다고 했다. 하얗고, 귀여운데, 긴머리의 짧은 치마를 입은 반스 신은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내가 나왔다고 했다. 당시의 내가 그랬다. 우스갯 소리로 여기에 교정기만 하면 전여친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랬을 때, 내가 눈을 흘겼지만 좋았다. 내 연애 인생을 통틀어 가장 나이차이가 많이 났던 사람이었다.


잘통했다. 글쟁이 출신 IT 업자여서 말이 통했다. 바로 내 전애인이 긱이라서 나도 IT에 눈을 뜰 때였고, 글을 정갈하게 써서 안끌릴 수가 없었다. 장난도 잘 맞았다. 가끔 나오는 진지한 모습도, 젠더의식과 정치이슈도 나랑 컬러가 같았다. 말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꼬실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넘어왔고, 열렬히 나를 좋아해줬다. 나보다 더. 나를 더.


사귀는 동안 한번은 내가 엄청 아팠던 날이 있었다. 열이 펄펄 끓어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해열제를 먹어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병원갔다. 약국 약으로는 안되어서, 독한 항생제를 타러 병원을 가야 했는데 신촌에서 우리 집까지 와줬다. 내가 달라는 애정보다 2배, 3배 더 줬던 사람이었다. 달달한 케이크를 사주고 곧 바로 돌아가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 앞까지 병원을 데려다 주려고 왔었다. 애인에게 그런 걸 바라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나봐서, 색달랐다.


근데 이건 그냥 친한 오빠로 냅뒀어야 했다. 친한 오빠로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사귀고 말았다. 세달을 못채우고 흥미를 잃었다. 연인으로서만 흥미를 잃은 거라 더 슬펐다. 물론 이별할 때 연달아 찍힌 부재중이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다만.. 헤어지고 나서 연락을 안하는 내 특성상 제일 아쉬운 인연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몇달 후 전화통화를 했을 때 설레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렇게 좋은 오빠를 잃는구나. 행복을 바란 첫 구남친이었다.




이 둘 모두 사귀면서 별다른 스토리가 없었다. 오래 좋아하지도 않았고, 기억에 남는 포인트도 없었다. 그래서 쓸 글이 없다. 내 지난 연애는 모두 글로 푸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글감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좋아한다고 종알거렸다. 너도 날 좋아하라고 애정을 원했다.


그 두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애라고 치는 것들 중 후회하는 연애가 있다. 하나는 분위기에 취해서, 하나는 그게 사랑이 아니란 걸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다. 좀 구분하면서 살지, 어린 나야. 특히 두번째 오빠는 후회가 많이 된다. 참 좋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결혼까지 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제일 정상적으로 결혼까지 간 케이스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딱 그때의 내가 나 스스로에 취해 좋아했던 거 같다. 그래서 연애로 치지 않게 됐다. 앞으로 이런 연애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당신의 분위기에 취해서, 무언가에 이겨먹고 싶어서 시작한 연애는 딱 거기까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대도 좋아서가 아니라 나만 좋아서 한 사랑은, 결국 가짜였음을 알게된 '경험'이었다. 경험은 한번이면 족하다. 유사경험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삶의 활력소 중 하나가 연애인데 좋은 연애만 하고 싶잖아. 암튼 연애 좋다. 내가 좋아하는 간질거리는 것이다. 안정적인 연애는 내 세상에 색을 칠해주는 요소가 된다. 사랑, 그게 뭐 대단한거라고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지 모르겠네. 연애 안한지 오래라 좋은 연애 하고 싶다. 여러분 날도 풀리는데 행복한 연애 하세요. 연애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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