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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 Nov 06. 2018

어제 저녁의 나

엉엉, 엉엉엉.

9월의 글을 뛰어 넘고, 10월에는 꼭! 써야지 했는데, 현생이 너무 바빠서 오늘에서야 펜을 들었다. 아니 펜을 들었다기 보다는 마이크로 소프트 워드를 켰다. 마침 쓸 것도 생겼다. 어제 저녁에. 


예전에는 힘들면 이유가 뚜렷했다. 어제는 진짜 힘들었다. 그냥 힘들었다. 왜 힘든지도 모른 채 힘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차 올라서 고개를 들었다. 사실 고개를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울었다. 감정에 복받쳐서 운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별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눈물이 자꾸 났다. 술도 안마셨다. 심각한 것 같아서, 울면서도 스스로 걱정했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심했던 날이었다. 차라리 술을 먹었다면, 술 기운이라는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뮤즈가 보고 싶었다. 내 앞에 가만히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대답해주는 거에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다. 뮤즈는 내가 20대가 넘어 심하게 사춘기가 왔을 때, 버팀목이었다. 지금도 곧 잘 그 역할을 해준다. 그게 참 힘든 건데, 아무런 권위의식 없이 나를 걱정해주고, 그에 따른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쉽지 않은 건데, 뮤즈는 그걸 늘 해냈다. 


울고 싶어서 찾아가면 막상 얘기를 나누느라 울 시간도 없었던 만남들과 찬 바람 불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다고 외쳤던 카톡들과 좋아하는 목소리로 정답은 몰라도 된다며 다독였던 위로들이 다 남아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사람을 하나 갖는다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아냐고, 친구가 물었었다. 옛날엔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할까, 했는데 맞는 말이다. 복 받은 일이다. 외형부터 내형까지 모조리 다 내 취향인 사람이 나랑 친하게 지내준다는 것 자체가 복이었다. 한 사람을 주제로 이렇게 긴 글을, 여러 번 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복이다. 벌써 몇번째 글인지. 알면 까무러칠 것 같다만. 


옛날엔 뮤즈랑 나눈 대화창도 쉽게 지우지 못했다. 가만히 두면 말을 계속 걸고 싶을 까봐 지웠던 4년이 넘도록 지우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대화창이었다. 하지만 어제 보고싶다는 말을 하려고 들어갔더니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깨끗한 대화창이 디폴트지만, 뮤즈와는 아니어서 낯설었다. 잊어가는 거라고? 아닐 걸. 뮤즈는 이제 그냥 하나의 뮤즈가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괜찮다. 그냥 너는 내 뮤즈가 되었다는 거야. 그냥. 


뮤즈를 좋아한다고 묻는다면, 당연히 좋다고 대답하겠지만, 남자로서 좋아하는 거면 글쎄다. 이제 남자로 좋아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지 않았나?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아쉬울 뿐이다. 친구였다면,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지금 같이 지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와 이미 너무 많이 특별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서서히 놓아줘야 하는 끝이 뻔해서. 보기만 해도 좋긴 하다만, 그래도 함께 더 있고 싶으니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카톡이 하나 있다. 즐겨찾는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 캡쳐 사진. 비가 오려나봐 안개낀것처럼 니가 뿌옇다고. 집에가는데, 날씨가 뿌얘서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이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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