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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 Dec 16. 2016

열심히 사는거지 뭐

누구는 스물 네 살이 여자의 두 번째 사춘기라던데 나는 스물 두 살이 딱 그랬다. 2학년 때부터 수업을 혼자 들었다. 그냥 그게 편했다. 2학년 때까진 전공 수업에 들어가면 동기들이 몇있곤 했는데, 학년이 바뀌니 남자들은 군대로, 여자들은 어학연수나 여행으로 하나 둘 없어졌다. 대학교 3학년은 그런 학년이었다. 특히 복수전공 수업은 동기보다 후배들이랑 많이 들었는데 더한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당시 학교에서의 나는 외톨이었다.  

그 당시를 지금 추억해보면 모든 것이 혼돈이다. 모든 부분이 스트레스였다. 학교만 다니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한번도 일주일 이상을 쉰 적 없으니 그럴 법 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특히 아침 나절의 등교 버스는 나를 진저리 나게 했다. 서울로 학교를 다니느라 타고 다닌 빨간 버스에서 헛구역질 하기를 여러 번이었고, 아무 이유 없이 분노로 가득 차 눈물을 그렁거리기도 했다. 화를 냈다 삭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입석으로 ‘매달려’가는 내가 너무 싫었다.  

학교를 잘 안갔다. 지각은 일쑤고 결석도 종종했다. 알람을 듣고도 다시 잔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공부도, 등교도, 알바도. 그래도 했다. 하교 후 집으로 들어왔을 때 나만 보는 엄마와 아빠의 눈에 떠밀렸다. 일주일에 여러번 울었다. 이유는 그냥 너무 힘들어서였다. 목적어 없이 힘들다는 서술어만 남았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강의실만 들어가면 숨이 막혔다. 고3 때도 울지 않던 내가 부모님에게 울면서 휴학을 통보했다. 휴학하기 쉽더라. 학사정보에서 몇 번의 클릭으로 어둠 속 나를 건진 셈이다. 나한테는 그 해 겨울이 새하얗다.  

한 학기 후 복학을 했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도, 길이 막혀도, 과제가 많아도, 성적이 그렇게 나와도 그러려니 했다. 전처럼 악을 쓰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예전이었으면 밤을 세면서 책을 모조리 외웠을 테지만 이젠 시간이 부족하면 그냥 읽었다. 안 그러면 내가 힘들 테니까 그냥 그랬다. 성적은 당연히 안 좋았다. 4학년 1학기에 처음으로 C+을 맞았다. 

휴학했을 때 정말 열심히 놀았다. 공부 한다는 핑계로 알바도 그만 뒀다. 영어 공부는 사실 대충이었고, 야구장을 열심히 다녔다. 그때 나를 잡아준 건 대외활동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야구뿐이었다. 6개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만 했다. 좋아하는 야구를 보고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남들은 논 줄 알았겠지만, 그 기간도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산 기간이 되었다.  

쉬는 것도 열심히 사는 인생 중 하나다. 나 때는 그걸 그냥 휴학이라고 했는데 요샛말로는 ‘갭이어’라고 한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그대로 네가 열심히 인생을 사는 방식일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사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니까 쉬어도 된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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