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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Apr 07. 2020

코로나 19가 불러온 구조조정

 그리운 일상은 무엇인가

 아이들의 긴 방학이 끝나기만 기다릴 때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가 사는 대구에서 31번 슈퍼 전파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바이러스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즐겨가던 음식점은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줄줄이 문을 닫았고 학원과 스포츠센터와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이 한꺼번에 폐쇄되면서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됐다. 나를 ‘대구 여자’로 기억하는 타 지역 사람들의 안부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대구는 바이러스로 오염된 도시로 모든 것이 멈추며 유래 없는 방학에 들어갔다.     


  일상이 그립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매일 보던 사람들을 만날 수 없고, 매일 가던 곳을 갈 수 없고, 매주 가던 교회를 멈추고 두 딸을 데리고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니 나의 시작도 그런 마음이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나 먹는 거였다. ‘급식’과 ‘외식’에 의존하며 집에서는 간단히 때우기 식이었던 식생활 패턴에서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집에서 해결해야 하니, 아이들은 차 안에 두고 마스크를 끼고 장을 보러 갈 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온라인으로는 냉동식품과 가공식품을 주문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냉장고 문을 자주 열었다. 가득가득 채워야겠다고 열었는데 냉장고 안은 버려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언제 넣어 둔지 모르는 음식들과 유통기간이 지난 식료품들이 구석구석 진을 치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묵혀둔 냉장고 청소와 유통기간이 지난 간장과 알 수 없는 소스 정리를 시작으로 우리 집의 옷장, 서랍장, 책장들이 차례대로 정리됐다.

 집콕 생활을 아이들이 답답해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답답한 건 엄마뿐이었다. 아이들은 예상외로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매일 옷장을 파헤치며 패션쇼를 하고 이불을 꺼내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창의적인 놀이를 이어갔다. 노래하고 춤추고 싸우고 답답하면 킥보드를 타고 집 근처 강변으로 나가 뛰어놀고 짬짬이 영상도 보며 개학이 미뤄지는 것을 기뻐했다. 학교와 학원이라는 시스템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해야  이 아닌 ‘하고 싶은 에 집중했다. 학교와 학원에 맡껴두고 방치했던 학습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불안감에 보냈던 학원을 정리하고 영어와 수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르쳐야 할지 홈스쿨링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으니 목소리가 커지고 손가는 것도 많지만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란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가장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는 돈이다. 회사 사정이 나빠진 남편은 출근이 반으로 줄면서 급여도 줄어들게 됐다. 당장 써야 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쪼그라들었다. 우리는 어디에 소비를 줄여야 할지 의논했다. 과도한 보험료와 사교육비를 줄이고 마트에 가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줄어든 급여만큼 남편에게는 시간이라는 여유가 생겼다. 헉헉거리며 회사와 집을 오가던 그가 안쓰러웠는데 남편에게 모처럼 주어진 여유가 고맙다.

    

 그리운 일상은 무엇인가. 외식과 급식에 의존하던 식생활과 학원과 학교에 맡겼던 아이들의 교육, 생각 없이 소비했던 생활은 진정 다시 찾고 싶은 일상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같이 밥을 먹고, 아이들과 더 친밀한 시간을 가지며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일상을 살고 있는 듯한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가 돌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파란 하늘을 보여준 뉴델리의 하늘처럼, 관광객이 사라지면서 물고기 떼들이 돌아왔다는 베네치아의  강물처럼, 흐트러지고 정신없었던 나의 일상도 자정능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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