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극단적인 서사의 드라마가 불편하다. 최근에 정주행 하다가 멈춘 <이태원 클라쓰>가 그랬다. 아는 선배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 <태양의 후예> 이후에 처음으로 마음먹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주인공은 하필 아버지 회사의 회장님 아들과 같은 반으로 전학을 가고 회장님 아들과 다툼으로 아빠가 실직을 하고, 아빠는 그 회장님 아들의 차에 치여 죽고 주인공은 감옥에 가고... 물론 배우들의 연기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고 대사도 멋졌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꼬여가는 스토리가 불편했고 주인공의 힘겨운 인생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지 않았고 그 후의 스토리도 대강 짐작이 가서 드라마를 멈췄다.
분명 행복을 선택하기 힘든 환경이 있다. 하지만 <이태원 클라쓰>의 꼬여만 가는 사건 이면에는 주인공의 선택이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선택들을 했고 내가 보기엔 피곤한 선택을 했다. 물론 주인공은 역경을 헤치며 심지어 주위 사람까지 소중하게 지키며 해피앤딩을 만들어 갔지만 나라면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드라마가 됐고, 내 삶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겠지. (나는 결코 내 삶이 드라마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은 뭘까. 드라마로 시작해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결론지만 '체력'이다. 체력은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와 컨디션이 나쁠 때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안다. 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면 결코 아이와 남편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은 아이의 질문에 대답조차 하기 싫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웃을 수 없으니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체력의 문제로 보지 않았을 때는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자책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날 컨디에 따라 목소리 톤과 인상이 달라지고 착한 엄마가 됐다가 무선운 엄마로 돌변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애 둘 낳고 고갈된 체력은 좀처럼 끌어올리기 힘들었다. 일어나서 커피를 마셔주고 양질의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지만 여전히 컨디션은 들쑥날쑥했다. 어떻게 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주된 관심사였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이라는 책에서 잠만 잘 자도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면접을 보기 전날 잠을 설친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면접 중에 나쁜 습관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나쁜 습관을 컨트롤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적용하며 잠만 잘 자도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건데, 그 사실을 안 뒤부터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를 썼다. 실제 잠을 잘 잔 날은 하루가 가벼웠다. 물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를 흔들기는 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행복이를 선택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체력! 즉 체력은 국력이자 행복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