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성분표를 읽는 밤

식품 알레르기는 ‘유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by 전의혁

괜히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밤이 있다.


저녁 마감 무렵, 약국 조명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분유 코너 앞에서 성분표를 접었다 펴는 손이 한참 머문다.
아이 손등에 남은 작은 붉은 자국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혹시나”라는 경계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알레르기 이야기가 나오면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우리 집안이 그러니까”라는 말로 마음을 접어둔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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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미국 의사협회 저널》에 실린 근거 검토는 그 결론을 조용히 흔든다.
어떤 아이가 식품 알레르기를 갖게 되는 데는 유전자만으로는 부족했다.
연구진은 40개국의 190개 연구를 모아, 총 280만 명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6세까지 약 5%의 어린이가 식품 알레르기를 발달시키는 것으로 정리됐다.


유전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연구진은 알레르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340개 이상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완벽한 폭풍”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유전자, 피부 건강, 마이크로바이옴, 환경 노출이 서로 맞물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분유 코너 앞의 표정을 떠올렸다.
“우리 집안이라서”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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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여기서 더 선명해진다.
생후 첫 1년 안에 습진이 있으면 위험이 3~4배로 높아졌다.
비강 알레르기가 있으면 위험이 3배였다.
천명이 있으면 2배였다.


가장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 가장 먼저 영향을 주기도 했다.


가족력은 생각보다 또렷했다.
부모나 형제자매 중 알레르기가 있으면 위험이 커졌다.
부모 모두가 알레르기가 있으면 위험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 도입을 너무 늦추는 경우도 짚었다.
생후 1년 이후에 땅콩을 시도한 아이는 땅콩 알레르기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았다.


항생제는 여기서 가장 날카로운 단서로 등장한다.
생후 첫 1개월 내 항생제 사용은 위험을 4배로 높였다.
임신 중 또는 아기의 첫 1년 동안 항생제를 복용한 경우도 위험이 증가했지만, 증가 폭은 32%~39%로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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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의심돼 왔던 몇 가지 요인은 이번 검토에서 배제됐다.
저체중 출생, 만삭 이후 출생, 모유수유 부족뿐 아니라 임신 중 산모의 식단과 스트레스 같은 요인들도 “적어도 이번 검토에서” 핵심 요인으로 남지 못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죄책감 목록을 한 장 덜어낸 듯했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가 “위험이 있는 아기”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조기 예방으로 이를 잠재적으로 막을 가능성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선임 연구자인 데릭 추 박사는 후속 연구의 조건을 분명히 했다.
같은 핵심 요인들을 측정하고 보정해야 한다고 했다.
더 다양한 인구집단을 포함하고, 식품 유발 시험을 더 자주 사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과 최신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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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전이라서”라는 한 문장을 잠깐만 뒤로 미뤄두자.


아이가 이미 증상이 있거나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식품 도입이나 약 복용을 혼자 바꾸기보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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