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일보다 먼저, 덜 아프게 늙는 일
나이를 들을 때보다, 검진표 속 숫자를 받아들일 때 마음이 더 복잡한 날이 있다.
건강검진 결과표를 식탁 위에 펴두고, 돋보기를 한 번 벗었다 다시 쓴다.
저녁 불빛 아래 접힌 종이 끝이 손가락에 닿고,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아픈 곳 하나를 고치면, 내 삶도 그만큼 길어지는 걸까.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몸의 시간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상태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정상 범위”와 “주의” 사이를 오래 들여다보는 밤이면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결과표 앞에서 병 이름보다, 내 몸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먼저 생각한 적이 있는가.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장수 의학 포룸 2026”에서 니르 바질라이 박사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심혈관질환을 완치해도 2년 이상을 더 얻기는 어렵고, 진정으로 10년을 넘는 장수를 이루려면 노화 자체를 치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가 붙든 질문은 분명했다. 인간을 모든 질병에 한꺼번에 취약하게 만드는 과정, 바로 노화를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었다.
핵심은 질병이 노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노화가 질병을 만든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실제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를 구분했다.
숫자로는 70세여도 몸은 훨씬 먼저 지칠 수 있고, 90세여도 삶이 충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나이표를 달고 살아도, 몸의 시간은 제각각 흐른다.
그가 언급한 뉴욕의 100세 장수인 가계 연구는 그 말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단지 오래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더 오래, 더 나은 삶을 살았다.
병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실버 경제의 엔진이 됐다.
일반적인 사람이 생의 마지막 15년 또는 20년을 만성질환과 씨름할 수 있다면, 이들은 그 시간을 수주 수준으로 줄인다고 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오래 덜 아픈 것이 먼저였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노화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그가 기대를 건 길 가운데 하나는 약물 재창출이었다.
이미 다른 적응증으로 승인된 약물을, 항노화 가능성까지 가진 도구로 다시 활용하는 접근이다.
메트포르민은 그 대표 예로 언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이 약을 복용하던 당뇨병 환자들은 복용하지 않던 환자보다 입원과 사망이 약 절반 수준이었다는 관찰이 있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극단적인 식이제한의 고통 없이 칼로리 제한의 이점을 재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SGLT2 억제제는 임상시험에서 전체 원인 사망을 40% 감소시킨 것으로 언급됐다.
노화를 겨냥한다는 말은,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니라 이미 손에 들고 있는 약을 다시 해석하는 일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건, 오래 사는 몸이 늘 더 많이 만드는 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연구들에 따르면 50세 이후 높은 수준의 성장호르몬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었다.
젊을 때처럼 계속 몸을 키우는 일보다, 고치고 버티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나 60대의 몸에 계속 성장을 밀어붙이는 일은, 오히려 암 같은 과정을 부추길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나이 든 몸은 더 만드는 일보다, 잘 고치고 오래 버티는 일을 택할지도 모른다.
IGF-1도 나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신호였다.
40세에는 높은 수치가 더 적은 질병과 연관되지만, 50세 또는 60세 이후부터는 관계가 뒤집혀 낮은 수치가 장수의 바이오마커가 된다고 했다.
동물에서 IGF-1 수용체를 차단하는 연구도 유망했다.
그 수용체 항체를 투여했을 때 더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기간도 유의하게 늘었다는 설명이었다.
이제 의학은 평균적인 나이보다, 각자의 몸이 얼마나 다르게 늙는지를 보려 한다.
정밀의학은 프로테오믹스, 즉 혈액 속 단백질 분석으로 생물학적 연령을 보고 어떤 장기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술은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암 생존자나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노화가 더 빨리 찾아오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남는 건 거창한 비밀이 아니었다.
적절한 영양, 규칙적인 신체활동,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견고한 사회적 네트워크에 기대는 사회생활.
질병이 생긴 뒤에 쫓아가는 것보다, 내 건강을 미리 돌보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오늘 결과표를 접는 손이 조금 무거웠다면, 당신이 약한 게 아니라 몸의 시간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