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I는 괜찮다는데, 허리둘레는 왜 자꾸 신경 쓰이는 걸까
건강검진 결과지를 펼쳤을 때, 제일 먼저 눈이 가는 숫자가 있다.
BMI. '정상' 범위에 들어 있으면 한숨 놓는다.
나도 그랬다.
작년 검진에서 BMI 23.4. 정상 체중이라는 글자를 보고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바지 허리춤은 해마다 한 칸씩 늘어나고 있었다.
벨트 구멍이 하나씩 뒤로 밀릴 때마다 "원래 이 바지가 작았어"라고 중얼거렸다.
그게 그냥 나이 탓인 줄 알았다.
며칠 전 미국심장협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 하나가 눈에 걸렸다.
대만 양밍교통대학 연구팀이 약 2,000명을 거의 7년간 추적했다.
결과는 단순했다.
허리둘레가 큰 사람은 심부전 위험이 올라갔고,
BMI가 높은 것만으로는 그 위험이 올라가지 않았다.
BMI는 키와 몸무게로만 계산한다.
그러니 뱃속에 지방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그게 근육인지 지방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같은 75kg이라도 운동선수의 75kg과 야근 후 편의점 도시락으로 버틴 사람의 75kg은 전혀 다르다.
체중계 위의 숫자가 같아도, 몸 안의 풍경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내장지방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피부 아래가 아니라 장기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지방이다.
손으로 잡히는 살은 피하지방이고, 잡히지 않는 살이 문제다.
이 지방은 그냥 쌓여 있기만 하는 게 아니다.
호르몬을 내보내고, 염증 물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연구에 따르면 이 염증이 뱃살과 심부전 사이의 연결 고리 중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차지했다.
혈액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심부전이 생길 확률이 높았다.
뱃살은 조용히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그 불이 혈관벽을 손상시키고, 심장에 흉터 조직을 남긴다.
아무 증상 없이, 천천히.
겉으로 말라 보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체중은 정상인데 체지방률이 높고 근육이 적은 경우.
의학에서는 이걸 '정상 체중 비만'이라고 부른다.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나온 체형.
BMI 표에서는 안전한 위치에 있지만, 뱃속 사정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미국심장협회는 이미 심혈관-신장-대사 증후군이라는 개념에 허리둘레 측정을 포함시켰다.
심장병, 신장병, 당뇨, 비만이 겹치는 이 상태가 심부전의 전 단계라는 판단에서다.
체중이 아니라 지방의 위치가 위험을 결정한다는 방향으로 의학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요즘 아침에 줄자를 하나 꺼내놓는다.
배꼽 높이에서 수평으로 한 바퀴.
남자는 90cm, 여자는 85cm.
이 숫자가 넘으면 복부비만이다.
CT를 찍지 않아도, 줄자 하나가 BMI보다 정직한 신호를 준다.
체중계 앞에서 숫자를 확인하고 안심하던 습관을 바꿔야 할 때다.
그 숫자는 몸 전체의 무게를 말해줄 뿐, 어디가 위험한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 연구는 아직 학술지에 정식 발표되지 않은 예비 결과다.
대상도 미국 한 지역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약 2,000명이라, 모든 사람에게 곧장 대입할 수는 없다.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남는다.
체중계 숫자보다 허리둘레에 먼저 눈을 줄 것.
오늘 저녁, 줄자 하나면 된다.
몸에 대한 판단은 담당의와 함께 하되, 관찰은 내가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