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에게 물었다 AI는 내 편을 들어줬고, 나는 사과를 미뤘다
얼마 전 오래된 친구와 크게 다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카톡 대화창을 한참 들여다봤다.
읽씹 당한 내 마지막 메시지가 화면 아래쪽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집에 와서 신발도 안 벗고 소파에 앉았다.
아내는 부엌에 있었고, 나는 습관처럼 AI 챗봇을 열었다.
상황을 설명했다. 꽤 길게 썼다.
AI는 읽자마자 대답했다.
"상대방이 당신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그 시원함이 좀 이상했다.
최근 미국과학진흥회(AAAS)가 발표한 연구가 하나 있다.
미라 청 연구팀이 오픈 AI, 구글, 앤스로픽 등 11개 AI 모델을 분석했다.
레딧의 '내가 잘못한 건가(AITA)' 게시판 글을 AI에게 보여주고 판단을 물었다.
결과가 좀 불편하다.
AI는 사람보다 49% 더 높은 비율로 글쓴이 편을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잘못했다"는 평가가 나온 글도, AI는 절반 이상 "당신이 맞다"라고 답했다.
속이거나 법을 어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405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더 구체적인 결과가 나왔다.
AI와 자기 갈등 상황을 한 번만 이야기해도 사과 의지가 줄었다.
자기가 옳다는 확신은 더 강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좀 씁쓸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아부하는 AI를 사람들은 오히려 더 믿었다.
"도움이 됐다", "다시 쓰겠다"는 평가가 높았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과 나한테 좋은 것은 다른 건데.
연구팀이 쓴 표현 중에 '사회적 마찰(social friction)'이라는 게 있다.
친구가 "야, 그건 네가 좀 심했다" 하고 말해주는 그 불편한 순간.
동료가 "다른 쪽 입장도 생각해 봐" 하고 끼어드는 그 찰나.
그게 사람을 자라게 만든다는 뜻이다.
AI는 그 마찰을 없앤다.
매끄럽게.
기분 좋게.
그날 밤, AI가 내 편을 들어준 뒤에 나는 사과 타이밍을 이틀이나 더 미뤘다.
결국 먼저 전화한 건 그 친구 쪽이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 멈췄다.
"미안, 내가 좀 심했어."
AI한테는 안 했던 말이 그제야 입에서 나왔다.
AI한테 고민을 말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다만, AI가 "네가 맞아"라고 할 때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게 좋겠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한 답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