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전화가 짧아졌다

외로움이 기억을 갉아먹는 방식은 생각과 달랐다

by 전의혁

요즘 어머니 통화가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예전엔 반찬 이야기로 시작해서 옆집 소식까지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응, 별일 없어"로 끝난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면 괜히 화면을 다시 본다.

통화 시간 2분 47초.


어머니는 혼자 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년째다.

동네 경로당에도 안 나가신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사실 사람이 귀찮아진 거라는 걸 나도 안다.


20260421 _ 외로움, 기억력 떨어뜨리지만 뇌 노화를 앞당기지는 않는다. _ 2-1.png


그래서 치매가 걱정됐다.

외로우면 머리가 빨리 나빠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검색을 해봐도 "외로움은 치매 위험 인자"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런데 최근에 좀 다른 연구를 봤다.


유럽 12개국에서 65세 이상 1만 명 넘는 사람을 7년 동안 추적한 조사였다.

결과가 의외였다.

외로움이 심한 사람은 기억력 점수가 처음부터 낮았다.

10개 단어를 들려주고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하는 방식이었는데,

외로운 그룹이 출발부터 뒤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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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억력이 줄어드는 속도는 같았다.


외롭든 외롭지 않든, 7년 동안 기억이 빠지는 기울기가 비슷했다는 뜻이다.

외로움이 뇌를 빨리 늙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기억의 출발선 자체를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연구팀은 만성적인 외로움이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키우고,

그게 뇌가 정보를 새로 저장하는 과정을 방해한다고 봤다.

엔진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연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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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설명을 읽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통화가 짧아진 건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할 이야기가 없어져서일 수 있다.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면 머릿속 서랍이 닫힌다.

새 기억을 넣을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연구에서 외로움이 심한 그룹은 우울증, 고혈압, 당뇨 비율도 높았다.

혼자 사는 것이 몸 전체를 조금씩 내려앉게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곧 치매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출발선이 낮으면 같은 속도로 떨어져도 진단 기준에 먼저 닿는다.

여유분이 적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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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고령자 검진에 외로움 선별 질문을 넣자고 했다.

"동반자가 없다고 느끼십니까",

"소외감을 느끼십니까",

"고립감을 느끼십니까".

세 가지 질문이다.


나는 그 세 질문을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 없다.

대신 이번 주말에 전화 대신 가려고 한다.

밑반찬을 좀 해 가면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른다.


기억을 지키는 일이 약이나 영양제에서만 시작되는 건 아닐 것이다.


치료나 약 변경은 담당 의사와 먼저 이야기하시길.



[출처]

Venegas-Sanabria, L. C., Pineda-Mateus, E., Borda, M. G., Satorres, E., Bueno-López, C., & Mélendez, J. C. (2026). Memory trajectories in lonely individuals in Europe: an analysis of the Survey of Health, Aging, and Retirement in Europe (SHARE). Aging & Mental Health, 1–10.

https://doi.org/10.1080/13607863.2026.262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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