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기억을 갉아먹는 방식은 생각과 달랐다
요즘 어머니 통화가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예전엔 반찬 이야기로 시작해서 옆집 소식까지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응, 별일 없어"로 끝난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면 괜히 화면을 다시 본다.
통화 시간 2분 47초.
어머니는 혼자 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년째다.
동네 경로당에도 안 나가신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사실 사람이 귀찮아진 거라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치매가 걱정됐다.
외로우면 머리가 빨리 나빠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검색을 해봐도 "외로움은 치매 위험 인자"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런데 최근에 좀 다른 연구를 봤다.
유럽 12개국에서 65세 이상 1만 명 넘는 사람을 7년 동안 추적한 조사였다.
결과가 의외였다.
외로움이 심한 사람은 기억력 점수가 처음부터 낮았다.
10개 단어를 들려주고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하는 방식이었는데,
외로운 그룹이 출발부터 뒤처졌다.
그런데 기억력이 줄어드는 속도는 같았다.
외롭든 외롭지 않든, 7년 동안 기억이 빠지는 기울기가 비슷했다는 뜻이다.
외로움이 뇌를 빨리 늙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기억의 출발선 자체를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연구팀은 만성적인 외로움이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키우고,
그게 뇌가 정보를 새로 저장하는 과정을 방해한다고 봤다.
엔진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연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그 설명을 읽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통화가 짧아진 건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할 이야기가 없어져서일 수 있다.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면 머릿속 서랍이 닫힌다.
새 기억을 넣을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연구에서 외로움이 심한 그룹은 우울증, 고혈압, 당뇨 비율도 높았다.
혼자 사는 것이 몸 전체를 조금씩 내려앉게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곧 치매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출발선이 낮으면 같은 속도로 떨어져도 진단 기준에 먼저 닿는다.
여유분이 적다는 게 문제다.
연구팀은 고령자 검진에 외로움 선별 질문을 넣자고 했다.
"동반자가 없다고 느끼십니까",
"소외감을 느끼십니까",
"고립감을 느끼십니까".
세 가지 질문이다.
나는 그 세 질문을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 없다.
대신 이번 주말에 전화 대신 가려고 한다.
밑반찬을 좀 해 가면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른다.
기억을 지키는 일이 약이나 영양제에서만 시작되는 건 아닐 것이다.
치료나 약 변경은 담당 의사와 먼저 이야기하시길.
[출처]
Venegas-Sanabria, L. C., Pineda-Mateus, E., Borda, M. G., Satorres, E., Bueno-López, C., & Mélendez, J. C. (2026). Memory trajectories in lonely individuals in Europe: an analysis of the Survey of Health, Aging, and Retirement in Europe (SHARE). Aging & Mental Health,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