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냉장고가 비어 있었다

심부전 환자에게 식료품을 '처방'한 병원 이야기

by 전의혁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병원에서 받은 건 약 봉투와 식이요법 안내지 한 장이었다.


나트륨을 줄이세요.

채소와 통곡물을 드세요.

가공식품을 피하세요.


차에 아버지를 태우고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김치 한 통, 고추장,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안내지대로 차리려면 장을 봐야 하는데,

아버지는 걸음이 불편했고 나는 다음 날 출근이었다.


그날 저녁은 라면이었다.


20260422 _ 심부전 퇴원 후 식료품 배달, 삶의 질이 달라졌다 _ 2.png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심부전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환자가 연간 수백만 명이다.

퇴원 직후가 가장 위험한 시기인데,

이때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기가 가장 어렵다.


달라스의 UT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 연구팀이 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퇴원한 심부전 환자 150명에게 90일 동안 건강한 식품을 배달한 것이다.

2024년 4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진행된 임상시험이었고,

결과는 《JAMA 카디올로지(JAMA Cardiology)》에 실렸다.


세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영양사가 설계한 완성된 조리식을 받았다.

다른 그룹은 신선한 채소, 과일, 심장 건강에 좋은 식재료가 담긴 박스를 레시피와 함께 받았다.

나머지 한 그룹은 식이 상담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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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식품 불안정 상태였다.

먹을 게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96%가 90일을 끝까지 버텼다.

배달 완료율도 90%를 넘겼다.


재미있는 건, 환자들이 완성된 조리식보다 농산물 박스를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스를 받으면 가족과 함께 요리할 수 있었다.

자기 입맛대로, 자기 문화대로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누군가 차려준 밥보다, 직접 끓인 국이 더 오래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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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말하면, 재입원이나 응급실 방문 횟수는 줄지 않았다.

90일은 그걸 확인하기엔 짧았을 수 있다.


하지만 식품을 받은 그룹은 삶의 질이 뚜렷하게 좋아졌다고 보고했다.

몸이 편해졌다고 느꼈다.

매일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심부전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 "오늘이 어제보다 낫다"는 감각은 약과 다른 종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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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책임자인 판데이 박사는 이번 시험의 목적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퇴원 직후 식품을 배달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환자가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답은 둘 다 "그렇다"였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아버지 퇴원 첫날이 생각났다.

냉장고 앞에서 안내지를 들고 멍하게 서 있던 그 저녁.

누군가 채소 한 박스를 문 앞에 놓아줬다면, 라면 대신 된장국이라도 끓였을 것이다.


약을 처방하는 것만큼, 냉장고를 채워주는 것도 치료일 수 있다.


치료나 약 변경은 담당 의사와 먼저 이야기하시길.



[출처]

Pandey A, Keshvani N, Coellar JD, et al. Food Supplementation in Patients Hospitalized for Heart Failure: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Cardiol. Published online April 08, 2026. doi:10.1001/jamacardio.2026.0435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cardiology/article-abstract/284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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