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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인형을 좋아해.

- 마음 풍경-

by 산들바람

어릴 때 무척 갖고 싶었던 1순위는 인형이었다. 그 마음은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남자친구가 선물로 줬다면서 인형을 들고 다닌

친구들이 있었다. 인형을 주는 남자친구라니..

두 배로 질투를 일으켰다. 나는 꽃보다 인형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간혹 자기 방이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방에 커다란 곰 인형을 두었다. 자기 방에 곰인형이 있는 친구라니..

두 배로 질투가 났다.

남자친구, 자기만의 독방.. 모두 부러웠다.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안 그래도 부러워죽겠는데, 거기에 인형이라니. 정말 폭발적으로 부럽다. 뽑기 놀이에 인형을 뽑아주는 사람이 최고라고 상상한다. 아직까지도 없었으니까.. 마음은 청춘이라더니, 내가 그렇다.

아직도 인형이 갖고 싶다.


물론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남아있는 마음속 풍금과 같은 느낌이 인형이다.

인형을 보면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살짝 어린이어른이 된다. 이 나이에 민망한 마음이지만, 뭔가를 좋아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고, 나쁜 일은 아니니까..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고 싶다.

이것을 덕후라고 하던가? 덕후! 일본의 오타쿠에서 시작한 것으로 한 가지 분야에 빠진 사람을 말한다.


몇 년 전 남편이 일본어 공부를 오랫동안 하고 나서 일본어 실력을 검증하고 싶다고 하여 도쿄 여행을 무작정 떠난 적이 있다.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근처에 가보고 싶은 곳을 지하철로 찾아가 보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일본의 이미지 안에는 전자제품이 떠오른다. 도쿄에서 전자 제품의 아키하바라는 네온 불빛 거리, 일본의 기술력과 뿌리 깊은 오타쿠 문화의 증거라고 한다. 번화한 지역은 전자 제품 상점, 애니메이션 및 만화 상점, 테마 카페의 보물 창고였다. 다양한 전자제품 상가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서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어를 모르니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선반에 놓여있는 각종 인형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서점에 웬 인형이?' 알고 보니, 그 인형을 뜨는 도안 핸드북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인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곰 인형을 주는 남자친구는 없었지만, 내가 만들어서 더 소중한 테디베어 인형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실로 인형을 뜨는 일에 마음이 급해졌다. 인형 뜨기는 책을 보고 뜨는 것은 어려웠다.

이 순간.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유튜브다.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니, 뜨는 순서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서로에게 너무나 좋은 모범이면서 스승이다.

나는 몇 분의 인형 뜨기 달인의 유튜브 스승을 만나서 욕심껏 갖고 싶었던 인형들을 만들어냈다.

남들도 나처럼 인형을 받으면 좋아할 거라는 착각으로 소띠 해에는 소 인형 키링을 20개 정도를 만들어 하나씩 선물하기도 했다.


인형은 몸체, 머리, 팔, 다리를 뜨고 형태를 만들어 구름솜을 넣고, 이어 붙이기를 한다. 귀와 꼬리도 뜨고 돗바늘로 모양을 만들어 붙인다. 얼굴에는 눈 모형의 검은색 구슬을 붙이고, 코와 입은 수를 놓아서 모양을 갖춘다. 리본도 만들어 붙이고 옷도 만들어서 입혀준다. 어릴 때는 종이 인형으로 끝을 구부려 옷을 입혀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곰은 정말 질리도록 많이 떴다. 멍멍이 강아지, 토끼, 헬로키티, 용, 소…



왜 이렇게 인형을 뜨는 일로 시간을 보냈을까?

심리학에서는 어른들의 내면 안에 어린아이가 어떤 모습으로도 남아 지금도 마음의 작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나의 내면아이는 부모님께 칭찬받고 싶어서 어떤 행동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까 하는 ‘착한 아이’ 마음이 남아있다.

착한 행동을 해야 예뻐해 줄 것이라는 내면아이는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고, 심지어 내 옆에 있는 누군가도 힘들게 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착한 행동(혼자서 착하다고 판단한 행동)을 했는데, 나에게 어떻게 그런 나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찌르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이제야 안다. 누구나 나쁜 사람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나쁜’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은 내 안에 울고 있던 어린 내면아이가 더 이상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된다고 깨어 나온 수많은 일들과 함께 어른으로 태어났다.

아직도 내면아이가 남아서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것이 느껴질 때는 가만히 어린 나를 불러내고 혼내지 않는다.

어릴 때는 어른들에 의해서 판단되고, 혼도 났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불러서 쓰담해 주면 된다. 그러면 내면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옅어진다.


나는 이렇게 인형을 갖지 못했던 (나만의 요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어린 날의 서운했던 마음을 소환해서 실컷 인형을 뜨면서 풀었나 보다.

인형 뜨기가 이제는 관심이 없고, 재미가 없는 걸 보면.. 한 때의 인형 오타쿠의 흔적이 집안에 남아서 나를 바라본다.


고마워.

나의 오타쿠 인형들!!

고마워.

내면에 살고 있었던 나의 어린아이!!

잘 자라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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