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보여주는 모습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슬픔이 말한다.


긴 울음 끝에 찾아오는 것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울림이었다. 이 슬픔 끝에 있는 것은 말한다. 어쩌면 슬픔의 전부를 받아들이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던 예전의 시간들을 끌어와 문득 잠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낯설다. 나는 '여기 이곳에서' 뭔가 달라진 나를 보고 있다.

어느 순간, 시간 여행은 이미 저만큼 가고 있는데 이곳에 남아서 나는 뭘 찾으려 하는 것일까? 시간만큼 달릴 힘이 없어서 그저 허우적거린다. 내가 알아차린 슬픔은 시간의 흐름만큼 나도 흐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멀리 달아나는 시간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슬픔도 평화로운 얼굴이다.


이상하다. 이 적막함이 오히려 고요하다. 시끄럽지 않은 곳을 찾아 숨어 들어온 이 공간에서 모든 것들로 벗어나 있는 평화를 느낀다. 내가 알아차린 슬픔은 고요함이다. 고요는 치유력을 갖고 있다. 가만히 가라앉아있으면 물이 맑아지는 것처럼 내 마음도 맑아진다. '아, 누구라도 슬퍼해야 한다' 나는 오래 이 슬픔의 자리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슬픔을 먼지 털어내듯 밀어버리지 말고, 슬픔의 자리를 쉽게 떠나지 말아야지.' 슬픔도 평화로움의 얼굴로 나에게 들이밀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무엇으로 그동안 기뻐했는가'를 슬픔이 말해준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겨울 밤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나는 기뻐했다. 어쩌면 그렇게 했을까? 내 기쁨은 매우 짧았고, 어쩌면 위선일 수 있었겠다. 슬픔을 가려버린 위장술이었다. 슬픔을 버리고 싶어서 기쁨을 가져다 놓는 이기적 나를 돌아본다. 삶은 웃어야 한다고, 웃는 날이 되라고 마음으로 기원해 준다. 기쁨의 강박으로 기뻐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인생이 소중하다고 말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버려야 할 감정으로 치부해 버린 슬픔은 어느 사이 성큼 내 마음 한가운데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마음 내면에 깔려있던 슬픔의 기저가 올라왔을 것이다. 사는 동안 때로는 기뻐했고, 때로는 슬펐다. 기쁜 날에는 환하게 웃는 날이 계속되길 바랐다. 간혹 슬픈 날에는 애써 자리를 벗어나려고만 했다.

간혹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말아야지. 왜 슬픈 눈물을 부끄러워했을까? 기쁨 앞에서만 당당하지 말고, 슬픔 앞에서도 당당하자. 한 번뿐인 인생을 기뻐할 수만 있을까? 한 번뿐인 인생이라서 더욱 슬퍼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기뻐서 활짝 웃는 것처럼 마음껏 슬퍼해야 인생이었다. 기쁠 때는 마음껏 웃었지만, 눈물은 마음껏 흘리지 못했다. 이제야 슬픔의 눈을 제대로 보았다.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 슬퍼해야 사람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강하다고 생각했다. 강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해서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슬프다. 껴안아야 할 슬픔이 앞에 있을 때 마음껏 울어야 사람이다.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는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슬픔이 보여주는 모습


슬픔은 사랑보다 소중함이고, 평등한 얼굴이며, 기다림의 슬픔이었다. 슬픔은 힘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늘 예전의 내가 아닐 것이다. 슬픔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울한 기분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웃어보고, 더 기쁜 것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한 번뿐인 삶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슬픔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기쁨의 그림자처럼 기쁨과 슬픔은 함께 오는 것이었다. 기뻐하듯 슬퍼할 일이다. 슬픈 것은 왜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눈물 뚝'이라고 어릴 때 눈물 짜는 모습은 못난 사람이라고 배웠다. 슬픔은 이겨야 하는 일이었다. 나에게 드러난 슬픔의 정체를 배웠다. 슬퍼서 우는 것은 못난 사람이 아니었으며, 이겨야 할 마음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못한 나를 슬퍼해야 할 일이었다. 슬픈 생각이 들어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을 외면하지 말고, 눈물이 흐르도록 둬야겠다. 슬픔에 그냥 무너지고, 져주어야겠다.


슬픔이...


사랑했던 순간은 떠난 후 슬픔이 말해준다. 슬픔이 더할수록 남아있는 사랑도 깊어진다. 내 사랑이 더욱 깊어지도록 슬퍼야겠다. 서러워 울었던 순간들, 내 마음을 몰라줘 울었던 순간들, 세상의 슬픔 대부분은 내 슬픔이었다. 날마다 저녁 뉴스는 누군가의 죽음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다. 그들의 아픔과 죽음을 내 기쁨 앞에서 조금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그간의 나를 돌아본다. 내 자리에서가 아닌 그들의 자리에서 슬픔의 위치를 바꿔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더 이상 할머니의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지 말고, 누군가의 슬픔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슬픔이 나에게 가르쳤다.

슬픔은 기쁨보다 따뜻하다.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욱 슬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마터면 나를 모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