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9월, 다시 글을 쓴다.
왜 글을 쓸 수 없었는지,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를 마주할 수 용기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았다.
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도 나의 존재로 있었지만, 나는 내가 그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때가 되면 밥을 먹었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영상들도 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학교에도 출근하였고, 해야 할 업무들도 해나갔지만 텅 빈 껍데기와 같았다. 그 속에 채워진 알맹이가 없이 어디에도 겉돌고 있는 나를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살고 있었지만, 나로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런 날을 살고 있는 생애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저녁이 되어 산책을 나가면 걷거나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걷거나, 말하고, 운동하는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날을 살고 있는 현실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를 마주했다.
땅을 딛고 걷고 있으나, 발이 둥둥 떠있는 느낌도 들었다. 길을 걷고, 어딘가로 향해가고 있었으나, 그 길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느끼지 않고 허둥대며 걷는 사람이 되어 발길을 옮겼다. 마치 자동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계추와 같이 발이 움직이고 있을 뿐, 집으로 가는 길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둘러봐도 즐거운 시야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아무것이나 했으나 그 가운데 즐거움과 의미는 없었다. 살아 있지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살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존재가 나에게 왔다가 사라졌다. 있을 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있을 때의 당연함이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았다. 당연하지 않음을 이제 알았으나, 당연한 존재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마음속에는 이렇게 살아있어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없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사실이 자꾸만 목에 걸린다. 목에 걸리는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목에 걸리는 현실 앞에서 나는 긴 터널을 걸어가고 있다. 어둡고, 두렵다.
그보다 더 절절한 느낌은 외로움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 어떤 사람의 마음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엄청나게 당연함이 아니었다.
나를 지켜주었던 반려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없다'는 사실 앞에서도 어쩌면 이렇게 시간은 흐를까?
있었다가, 없으니 나는 뭐든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존재는 반드시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한다. 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곧 있음이다. 있음은 없음과 다르지 않고, 없음은 있음과 다르지 않다. 반야심경 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 구절이 마음에 들린다. 폐고혈압으로 숨이 거칠고, 배에 복수가 차올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도 배는 불러있던 그런 날에도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았었다. 아파서 종일 옆으로 누워있으니, 나를 바라볼 힘은 있었고, 내가 가는 길마다 따라다닐 힘은 있었다. 그래서 못 보내겠다 했으나, 결국 보내야 하는 것에 동의하고 말았다. 어느 날 나에게 온 존재가 이제는 없으나 여전히 나에게는 있다.
17년을 날마다 큰 눈동자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17년을 나를 향해서 달려오고, 집에 돌아오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17년을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를 지켜주었다.
17년을 간혹 슬픈 날에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17년을 내가 그 생명체를 케어해 주었다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반대였다.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자고 있는 내 옆에서 같이 누워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다가와 미동이 없이 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지켜준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존재가 곁에 없다. 그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17년을 함께 하면서 단 한마디 인간의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날마다 말을 나눴다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가운데 들리지 않는 말들이 나에게 왔다. 그런 날들이 17년이었다.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9월 10일. 내 곁을 떠난 날이다. 그동안 함께 해서 많이 행복했고,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
내 마음속에 언젠가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서로 알아보고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위로한다. 우리는 서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이다. 마치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 본 듯할 때 나는 반갑게 그 존재를 운명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