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내 마음의 반창고는?

by 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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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


인생은 하루하루가 다 같은 날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루하루가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이런 상황이면 미래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미친 게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루 사이에 불행과 행복을 오간다면 미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40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불행의 끝을 느낄 때도 있었고, 행복의 끝을 느낄 때도 있었다.


행복한 날은 오히려 괜찮다. 하지만 내일이 없어져도 좋을 만큼 죽을 것 같은 고통 앞에서 우린 약해진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날….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시기에 보기 시작한 미드가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펼쳐지는 외과 의사들의 성장기를 그린 〈그레이 아나토미〉이다. 외과의가 나오는 드라마는 직업의 특성상 자극적인 소재가 많다. 그날따라 주인공들에게 악운이 겹친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7명이 모두 죽고, 이성 친구와 헤어지고, 상사에게 깨지고, 잠 못 자고 일한 시간이 48시간이 지났다. 정말 의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것 같은 그 순간, 주인공 중 한 명이 가볼 곳이 있다고 한다. 이럴 땐 그곳에 가야 한다고 손을 잡아끈다.


그렇게 간 곳은 병원 한 켠에 있는 신생아실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누구보다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그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함과 편안함이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한동안 말없이 지그시 바라보던 그들은 지친 마음이 조금이라도 보듬어진 듯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어린 시절의 나


“지금 몇 시지? 이번엔 누가 말해볼까?”

“저요! 저요!”

유치원의 기억은 종이 인형을 오리거나, 뛰어다니거나, 간식을 먹었던 것 정도뿐이다. 유일하게 무언가 배운 기억이 있다면 시계 보는 법이다. 생일이 1월이라 한 살 일찍 들어간 유치원이었지만 다행히 또래보다 총명했던가! 난 단박에 시계 보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신은 여섯 살의 내게 시간을 보는 총명함만 주었을 뿐 시간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주지 않았다.


여러 날에 걸쳐 시계 보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께서 오늘은 시간을 알아맞히는 순서대로 간식을 나눠주겠다고 하신다. 첫 번째 문제부터 알고 있었지만 수줍은 나는 한 번도 손을 들지 못한다. 벌써 친구들의 반이 간식을 들고 뒤쪽으로 가 앉았다. 입가에 말이 맴도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선생님은 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내 이름을 부르면 손을 들지 않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기다린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고작 세 명의 친구가 남았을 때 선생님이 나를 부르신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여섯 살 내가 말한다.

“8시 30분이요!”

“잘했다! 간식 받아 가렴~.”


그렇게 간식을 어렵게 받아 든다.


이제 간식을 먹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빵을 먹으며 주위를 살핀다. 조심스레 노란색 유치원 가방에 먹지 않은 요구르트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가방을 살며시 닫는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항상 간식이 나온다. 간식은 매일 다르다. 보통 빵과 요구르트를 준다. 컵케이크나, 우유가 나오기도 한다. 과자를 구경하기 힘든 시절, 간식은 언제나 맛나다. 간식이 나오면 두 개 중 한 개만 먹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소중한 보물인 듯 조심스럽게 노란색 유치원 가방에 다시 넣는다.


집으로 가는 길, 가방만큼 내 마음도 묵직하다. 어깨를 으쓱으쓱하고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걷는 내 발걸음은 기분 좋은 발걸음이다.

“다녀왔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네 살배기 남동생이 엄마보다 먼저 쪼르르 달려 나온다. 남동생은 반팔 소매에 아래는 팬티만 입었다. 달려 나와 웃으며 손을 벌린다. 노란색 유치원 가방 속에 손을 넣어 가져온 요구르트를 꺼낸다. 남동생의 손 위에 놓아준다. 남동생은 좋아서 방방 뛴다.


마흔인 나를 그즈음 어느 날로 보내본다


유치원에 다녀온 여섯 살 내가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연다. 마흔인 내가 손을 내민다. 포슬포슬 따뜻한 빵 하나를 여섯 살 내가 마흔인 내 손 위에 올려놓는다. 손바닥이 빵 온도에 따뜻해진다.


지친 나의 마음에도 손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마흔의 내 마음이 유치원 가방의 무게만큼 보듬어진다. 지친 마음이 간식을 나누어 먹는 여섯 살 내 마음처럼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진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마음만큼 따뜻한 빵을 손 위에 올려본다. 지금, 나의 마음에도 빵의 따뜻함이 전해질 수 있을까?








이 글은 신간도서 <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셀프 위로법)>에서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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