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나쁜 일은 없다.

내 인생에 나쁜 일은 없다.

by 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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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


추운 겨울이다. 언니와 나, 남동생 셋이 안방 가장 따뜻한 곳에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적당히 도톰하고 따뜻한 이불은 아주 포근한 느낌이다. 방구들에서 전해오는 뜨거울 정도의 따뜻함이 일곱 살 내 등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된다.

“배고프다!”

삼남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시내 다녀오신다고 나가신 지 꽤 되었다. 식사 때가 지난 삼남매는 누워서 마냥 엄마를 기다린다. 밖에는 눈이 내린다. 바람이 세게 부는지 창 사이로 ‘휙! 휙!’ 하는 소리가 들린다. TV에서 새우과자 광고가 나온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아~ 마시게따!”

네 살의 남동생은 이제 막 말을 시작해 새는 발음으로 새우과자를 먹는 시늉을 한다. 맛나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던 언니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먹고 싶은 거 말하기 할까?”

“먹고 싶은 거?”

배가 너무 고파 귀찮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배고픈 느낌이 나아질 것도 같다. 그래!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난 만두!”

그렇게 시작되었다.

“난 쫄면!”

“난 새우과자!”

언니에 이어 동생도 대답한다. 그렇게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날, 먹고 싶은 음식을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돈가스, 볶음밥, 짜장면, 라면, 계란찜, 돼지고기 찌개, 감자탕…. 먹고 싶은 것이 참 많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끼니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미워진다. 방 밖에서 현관문 소리가 난다.

“엄마 왔다!”

엄마의 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은 느낌이다. 머리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인 엄마가 양손에 비닐봉지를 가득 들고 들어오신다. 하필이면 엄마가 시내에 장 보러 가신 날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이 눈에 들어왔고, 이것저것 더 사느라 늦으셨단다.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타고 오셨단다. 눈이 내려 더 늦었다고…. 연신 미안하다 하신다.

“우와!”

엄마의 보따리를 보던 나는 환호성을 지른다. 먹고 싶다고 했던 만두가 들어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찐빵도 들어있다. 언니가 좋아하는 쫄면도 있다. 마술 같다. 이쯤 되니 동생도 새우과자는 잊고 정신없이 입 속에 만두를 밀어 넣는다. 행복하다.


마흔의 나도 일곱 살 내 옆으로 보낸다.


일곱 살 나와 같이 만두 한 입에 단무지를 베어 문다. 만두를 먹으며 일곱 살 나를 바라본다.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엄마가 오지 않아 속상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사시느라 좀 더 늦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좋아하는 만두를 입이 터져라 먹고 있다.

엄마가 만두를 사지 않고, 조금 더 일찍 오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 되었으리라. 엄마를 기다리던 긴 시간과 만두가 없었다면 마흔의 나는 이 일을 추억할 수 없었으리라….


이런 순간순간의 연속이 인생이다.


당시는 내게 일어난 일이 나쁜 일 같았다. 지나고 보니 그 일로 나는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 어쩌면 ‘더 낫다, 더 못하다 ’는 그냥 생각일 뿐이다. 일곱 살 소녀였던 내게 그날은 배고프고 힘들었던 날이 아니다.


그냥 ‘엄마가 시장 갔다가 늦게 오신 날’이다.


또는 ‘만두 먹은 날 ’이다. 엄마에겐 ‘삼남매를 힘들게 한 날’이 아니다. 그냥 ‘찐빵 먹은 날 ’일 것이다.

마흔의 내게 일어난 일 중 나쁜 일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을 그냥 일어난 일로 받아들여 본다. ‘나쁘다! 좋다!’를 빼본다. 일어난 사실의 양 갈래로 나뉜 흑과 백의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에 대한 생각은 굳이 필요 없다. 마음의 상처는 생각에 있다. 생각을 떼어내면 사실만 남는다.


처음부터 나쁜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나쁜 일은 없을 것이다.



객관적인 자아상은 자기도식


자기도식(self schemata)은 능동적으로 정신 과정을 조직하고 개인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결정하는 비교적 내구성을 지닌 인지 구조를 지칭한다.

자기도식은 현실적인 것에서부터 왜곡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감정을 내려놓고 사실만 보는 것은 객관적이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