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출한다 고로 생각한다
먼저 이 글의 제목은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에서 따 왔음을 밝힌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날 나는 새벽 5시 40분에 기상해 6시에 집을 나선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이미 해가 떠 사위가 밝아진 시간이다. 이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 자도(자전거 도로라는 뜻)로 진입하고, 그곳에서 10여 킬로미터를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되고, 생각할 일이 없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기하게도 매일매일이 조금씩 다른 나무들의 모습이나 다르게 느껴지는 공기, 계절의 변화, 이른 시간부터 성실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모습... 같은 것들도 물론 보지만 이미 우리 선조와 선배들이 이야기해 온 주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대신 자전거 출근 중 내가 주마간산으로 본, 하지만 나름의 흥미와 애정을 가지고 보고 생각한 것들은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살고 있는 건물의 1층에 있는 세탁소 사장님의 미스터리한 출근 시간, 하천의 일정 구간을 공사할 때 만들어 두는 보행자 및 자전거 우회로, 단체로 에어로빅을 하시는 중년 여성들, 의외로 새벽 시간에는 벌레가 많지 않다는 사실 등…
각 주제에 대해 했던 생각들을 늘어놓아 보자면 이렇다.
먼저 내가 살고 있는 건물 1층에는 세탁소가 있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그 앞에서 첫 페달을 밟는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첫 자출 때 조금 놀랐던 점은 새벽 6시에 이미 세탁소 사장님께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일찍 출근하시고 일찍 퇴근하시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며 가며 보면 밤 10시에도 영업 중이시기 때문이다. 출입문 근처에 표시해 두신 공식 영업 시간은 평일 기준 오전 8시~밤 8시인데(이것도 너무 길다) 분명 그보다 많이 일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때마다 그의 오버워킹에 대해 딥띵킹을 하게 된다. 나는 회사에 가기 싫어서 매일 아침 거의 울면서 출근하는데, 무엇이 저분을 저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일까. 나도 자영업을 한다면, 그래서 내가 더 일하면 더 일한 만큼 수익으로 직결된다면 저렇게 할 수 있고 하고 싶을까? 하지만 비포괄임금제 안에서는 나 같은 직장인도 어느 정도 근무 시간에 따른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데. 그럼 수익 때문만은 아니라면 혼자 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다면, 또는 일이 너무너무너무 재밌어서 거의 노는 마음가짐으로 일할 수 있다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인생은 짧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와중에 많이 일하는 것이 좋다고만 볼 수 있을까? 우리 한국인들은 OECD 평균에 비해 너무 많이 일하고 있고 (이하 중략) 하고자 하는 말의 요는 출근할 때마다 부지런한 세탁소 사장님을 마주하고, 그와 대비되는 ‘출근하기가 죽도록 싫은 나’의 마음을 끝없이 합리화하는 과정을 페달과 함께 밟아 나간다는 것뿐이다.
그러고 나서 자도로 달리다 보면 홍수 예방, 수질 개선, 친환경적 수변 공간 조성, 지역난방 관이나 오수 관 교체 등 하천 공사 현장과 필연적으로 마주친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몇 번에 걸쳐 서로 다른 공사 현장을 지나다 보니 문득 공사 현장엔 항상 우회로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사로 인해 기존 보행로 및 자전거 도로를 막게 되면 그곳을 통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우회로를 만들어 공사로 인한 불편을 줄여 주는 것이다. 단순히 한쪽 길을 터놓는 수준이 아니라 시멘트나 철판 등을 이용해 우회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진행한 곳도 적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것은 공사를 하기 위한 우회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인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르지만 공사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배려로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면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들이 보인다. 이분들은 예를 들면 코요태, 소찬휘와 같은 90년대~2000년 초반을 풍미한 가수들의 신나는 유행곡을 틀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신다. 이 또한 주마간산으로 보았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무리가 꽤 큰데, 거의 한 6*5 정도의 행렬로 구성되어 있고, 앞쪽엔 강사로 보이는 야무지게 생긴 분께서 추임새를 넣으며 동작을 가르쳐 주신다. 나는 이분들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그 시간에 그곳에 그렇게 큰 규모로 모임을 형성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건지가 궁금했다. 강사 분은 재능 기부를 하시는 건지, 아니면 어떤 지자체로부터 보수를 받으시는 건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움직일 일이 많지 않은 노년 분들껜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그러다 보면 문득, 출근길에는 퇴근길보다 벌레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퇴근길에는 정말 달리다 보면 울고 싶을 정도로 벌레가 얼굴을 향해, 눈과 콧구멍과 입을 향해 돌진한다. 고글과 마스크 없이는 주행이 힘들 정도고, 집에 도착할 즈음엔 머리며 옷이며 마스크며 살아있는 벌레와 죽은 벌레들이 가득 붙어 있다. 반면 새벽 주행은 벌레로부터 꽤 쾌적하다. 왜일까? 벌레도 자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는 속담은 이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두서없이 늘어놓았지만,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이와 같이 두서없는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이 또한 자동차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동차를 탈 땐 목숨이 걸린 일이므로 운전에 상당한 집중력을 쏟아야 하며, 대중교통을 타면 금세 잠들거나 스마트폰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정보들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생각 행위는 머리 아프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것을 하지 않으면 평소에 전혀 보거나 생각할 일이 없는 주제들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다 보니 뇌가 자기 마음대로 미화를 하는 건지, 어쩐지 자전거 타고 달릴 때 보이는 장면들은 평소보다 정겹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