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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더 짧은 현상에 대한 고찰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

by homebody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일터와 집을 오갈 때마다 스마트 워치로 주행 거리, 고도, 속도, 시간과 심박수 등을 기록한다. 꾸준히 자전거 출퇴근을 이어가며 이 기록이 쌓이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분명 같은 코스를 방향만 반대로 달리는데 이상하게 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항상 더 짧고, 평균 주행 속도가 빨랐다. 코스 안에서 오르내리는 구간이 퇴근길에 더 쉽게 형성되어 있거나, 풍향이 저녁 시간마다 등 뒤에서 밀어주는 형태인가 싶어 기록 안의 수치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과 인간답게(모든 문과가 그런 것은 아니며, 본인이 문과를 대표하지 않음) 창을 닫았다. 나는 다만 이런 수학적, 물리적 데이터에 주목하기보다는 출퇴근 및 자전거 주행의 주체인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최근 읽고 있는 《제럴드 와인버그의 글쓰기책》에서 저자는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써라’라고 했다. 관심이 없거나 쓰고 싶지 않은 주제에 대해 쓰는 것은 쓰는 행위 자체도 곤혹이지만 절대 좋은 글이 탄생하길 기대하기 어렵고, 비효율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완전히 동의하며, 내 자전거 주행에도 대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문제는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달리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출근 시의 나는 관심이 없거나 가고 싶지 않은 공간을 향해 달리느라 달리는 행위 자체도 곤혹이지만 효과적인 라이딩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반대로 퇴근 시의 나는 너무나 관심 있고, 흥미롭고, 짜릿하고, 가고 싶은 공간을 향해 달리므로 달리는 행위 자체도 행복스럽고 효과적인 라이딩이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집은 왜 씽씽 달려가고 싶고, 회사는 가고 싶지 않아서 쫌쫌따리 뉘역뉘억 티끌 모아 태산으로 겨우겨우 억지 페달을 밟아 느릿하게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두 목적지를 단순 비교한 표다.

회사/집 비교표

몇 가지 항목만 봐도 집이 월등하게 훌륭하다. 압도적으로 압승이고 압살이다. 집은 왜 이렇게 좋은 것일까?


집은 나에게 행복감만을 준다. 집은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혼내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압박하지 않는다. 집은 조용하고 온전히 내 취향으로 구성된 물건들이 익숙한 곳에 놓여 있다. 집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를 평가하지 않고 온도 습도 조도를 나에게 맞춰준다. 집에는 불필요하거나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없다. 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있고 예쁘고 귀여운 화분들이 있다. Home의 H는 Happy에서 따온 것 같다. 집에서는 내 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집에는 갈등이 없다. 집은 (이하 중략)


나는 목적지를 어디로 설정하느냐가 과정의 즐거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레 흥미로웠다. 이 글에서는 회사와 집이라는 목적지가 자전거 출퇴근이라는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살아내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일상이 즐거우려면 목적지, 다시 말해 지향점을 잘 설정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지향해야 삶이라는 라이딩(허세 오져)이 즐거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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