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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자전거를 사고 싶지 않았던 사연

공공자전거가 있기 전부터 자전거는…

by homebody

우리 한국인들은 카페에서 랩톱 컴퓨터나 태블릿을 이용해 작업을 하다가 화장실 이슈로 잠시 자리를 비울 때 그것들을 그대로 두고 다녀온다. 때때로 붐비는 카페에서 주문 전 자리를 먼저 맡고자 할 때 해당 자리가 선점되었음을 표시하기 위해 휴대폰이나 지갑 등의 소지품을 올려놓고 주문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고가의 소지품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킨다. 우리에게 이것은 무척 당연하지만, 소매치기가 아주 극성인 서구권 외국인들은 이를 신기해하며 한국은 치안이 아주 좋고 국민성이 정직한 나라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 소지품이 자전거인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음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 유치원 재학 시절이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와 놀았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로 갔다. 내 자전거는 아마 오빠가 세발을 떼고 두발로 레벨업 할 때 물려받은 세발자전거였고, 다운튜브에 부모님께서 유성매직으로 우리 집 동, 호수를 적어 두셨다. 나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서 저녁도 먹었다. 그러다 문득 놀이터에 자전거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당시나 지금이나 성질이 불같았고, 버럭버럭 나와 오빠를 혼내셨다. (오빠는 같이 놀지 않았다 그는 왜 혼났는가? 바로 동생을 잘 가르치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도 유딩임에도) 우리는 이미 주위가 깜깜해진 밤에 자전거를 가지러 놀이터로 갔다. 그런데 자전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한바탕 아버지에게 혼나고 온 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나서 뺑 울었다. 내가 우는 동안 이 자전거 분실 사건에 연루된 바가 없고, 잘못은 더더욱 없는 불쌍한 오빠가 집에 가서 부모님께 놀이터에 자전거가 없다고 이실직고했다. 아버지는 더 노발대발해서 오빠가 혼났다.


그 아파트 단지는 복도식 아파트였고 대개 17~20층까지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가 있는 집은 대개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 두었다. 그날부터 한 사나흘 동안 엄마랑 오빠랑 저녁 식사 후 동을 옮기며 자전거를 찾아 아파트 복도를 돌아다녔다. 나는 이상하게 그 산책 같은 시간이 재미있고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발자전거가 아깝거나 꼭 찾아야 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함부로 아무 데나 두고 오면 안 되고,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하며, 물건을 소중히 아껴 사용해야 함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 같다. 자전거는 결국 어떤 집 현관문 앞에서 찾았다. 그 집에서 나온 어른은 애가 주인 없는 자전거인 줄 알고 가져왔다며, 사과하시고 자전거를 돌려주셨지만, 유성매직으로 쓰여 있던 당시 우리 집 동, 호수는 아세톤 같은 것으로 벅벅 지운 자국이 나 있었다.


두 번째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은 고3 여름방학 때였다. 학교는 방학 때도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습실을 개방해 운영했다. 자습실에 매일 자전거를 타고 간 것은 아니고, 그날이 처음이었다. 평상시에는 엄마가 차로 태워다 주시거나,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날 하필 왠지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었다. 그리고 교내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자물쇠도 야무지게 채워 두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하하 참나) 몇 시간 뒤 집에 가려고 자전거를 찾으러 갔는데 자전거가 없었다. 나는 황망해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CCTV도 없었다. 교무실에 가서 아마도 당직으로 나오신 선생님께 자전거를 교내 거치대에 두고 잠가 놓았는데 없어졌다고 말씀드렸다. 찾아주길 바라거나, 나서서 어떤 대처를 해 주실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정도를 가이드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견물생심‘이란 사자성어를 알려주시며, 생심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지금 다 커서 생각해 보니 선 생 님 어 떻 게 그 러 실 수 있 어 요………


고3이었던 만큼 울진 않았지만 남을 생심하게 한 것에 꽤 상심하며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방탄섬유 소재와 같이 튼튼해서 힘으로 풀거나 가위 등의 도구로 자를 수 없는 자물쇠가 잘 나와서 좀 덜할 것 같지만, 그 당시 시중에 보급형으로 팔던 자물쇠들은 스킬과 힘만 있으면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또래 철없는 남자애들이 그런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를 훔쳐 타고 놀다가 길에 아무 데나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속으로 그들을 더럽게 욕하며 집에 가서 엄마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엄마는 어렸을 때처럼 그것을 찾으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보다는 나를 데리고 나가 옷을 사주시고,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다. 아마도 허한 마음을 채워 주려 하신 것 같다.


그 뒤로 쭉 자전거가 없는 삶을 살았는데, 대학생 땐가 첫 직장을 다닐 땐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주말 가족 모두가 대형마트에 갔다가 기분파인 아버지가 갑자기 자전거를 또 사주셨다. 사달라고 하거나 필요하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것은 알톤사에서 나온 은색 프레임을 가진 보급형 로드 자전거였다. 두 번째 자전거를 잃어버린 이후 나는 다시 자전거를 갖고 싶지 않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자전거가 갑자기 생기니 마음이 두근거리고 기뻤다. 그 예쁜 은색 자전거를 타고 주말마다 하천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 자전거 역시 어느 날 두 번째와 동일한 방식으로 잃어버렸다. 누군가를 또 생심하게 한 것인지 생각했고, 다신 자전거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자전거 도난 후기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고, 훔친 사람을 찾았을 때 철없는 아이들이 아닌 다 큰 어른들인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고가의 랩톱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지갑은 훔치지 않는 사람들이 왜 자전거만은 남의 것이어도 자기가 타고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자는 범죄고 후자는 그렇지 않거나, 전자는 처벌 대상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번에 출퇴근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살 때까지도 자전거를 사면 또 누군가 훔쳐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나는 내가 애착을 가지고 이름을 지어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또는 악의 없이 가벼운 장난쯤으로 함부로 가져가 함부로 쓰다 함부로 버리는 것이 너무 끔찍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마 아예 접어서 집안에 보관할 수 있는 형태의 자전거가 아니었다면 자전거를 사지 않았을 것이고, 자전거 출퇴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일도, 그것을 기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자전거 자물쇠도 소재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엄복동의 나라’라는 자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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