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읽고 나서
송길영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구조적 변화 속에서 탄생한, 기존에 없던 존재인 새로운 개인을 ‘핵개인’으로 정의하며, 이 핵개인이 어떤 사회, 경제,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이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어떻게 모색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나아가 핵개인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태세를 갖춰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작가는 우리가 날씨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듯, 삶을 대비하기 위한 큰 호흡으로서의 시대예보를 이 책으로서 독자에게 제공한다.
나는 이 책을 완독하는 데 거의 반년이 걸렸다. 한번에 쭉 이어 읽지를 못했고, 읽는 동안에도 이 책을 회피하느라 몇 권의 다른 책을 병렬로 읽고,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책을 골랐다. 이 책이 어째서 이다지도 힘들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봤다. 내용이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문장이 안 읽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읽히는 바람에 나는 긁혀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치우치거나 닫혀 있지 않고, 허황된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다. 모든 예측은 현실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다각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하며, 예리하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이다. 심지어는 문장마저 수려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반박조차 하고 싶지가 않고, 어느 하나 꼬투리를 잡을 수 없으며, 그냥 전의를 상실해서 ‘그래요…선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라고 Deal with it 하거나…반대로 ‘아닌데? 그러면 안 되는데? 싫은데?’하며 떼쓰고 엉엉 삐융 울고 싶다. 방금 전의(戰意)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책의 모든 문장에 공감하면서도 이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책이 바라보는 미래가, 그것도 정말 빠르게 실현되어가고 있는 그 미래의 일부가 나는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내가 긁힌 부분은 주로 ‘제2장 코파일럿은 퇴근하지 않는다’에 밀집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다음 내용이고, 이것을 읽을 때 내 감상도 함께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비용이 올라가는 이상 기계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지만 로봇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관리와 경영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봇은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고 중국어도 합니다. – p103
ㄴRe: 사측이세요?
2023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의하면 자동화로 인해 전 세계 3억 개 정도의 일자리가 위협 받지만, 동시에 매년 7%의 GDP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AI로 인한 혜택이 인류에게 경제 성장의 가파른 기울기로 다가올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p121
ㄴRe: 그만 좀 성장해…지구 기온이 1년에 1.5도씩 오르고 해수면이 3mm씩 상승하고 가뭄에 홍수에 산불에 환경 오염에 생태계 박살에 꿀벌도 다 죽고 지구 다 망해가는데 경제 좀 그만 성장해!!
바뀌는 것들을 인식하고 내가 그에 따르는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함께 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적 경험에 축적된 노하우만을 무기 삼아 커리어와 자신의 일을 지키려 하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구, 새로운 기술, 새로운 연결성에 대한 적응이 요구됩니다. – p143
ㄴ Re: 제발…저는 더 이상 머릿속에 몰 더 넣고 싶지가 않다고요…
당연히 저자만큼의 거시적이고 다각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에서 사회의 변화를 바라보지는 못하고 살았지만, 사실 AI와의 협업 또는 AI를 활용한 다른 직무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ChatGPT에게 ‘너 내 직업 빼앗을 거야?’라고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진 뒤 ‘안 빼앗겠다’는 거짓 답변을 받고 ‘휴, 안 빼앗겠다고 하네’하며 안심하는 척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끝없이 불안에 떨었고, 그러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의 이런 상태를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과 예측이 뼈아팠던 것 같다.
하지만 회피하느라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완독한 것은 그래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MZ’로 묶여 있는 세대이고,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자라면서는 전통적인 집단 중심의 교육을 받아 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현대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충돌은 내 내면에도 무의식 중에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진로조차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며 삶을 주도하며 결정하기 보다는, 부모님, 선생님, 사회, 국가가 원하는 방향의 결정에 따라 공부하고, 취업하고, 일해 왔기 때문에 그 과정 끝에 쥐게 된 무언가를(쥐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별로 그렇게 원하지 않음에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더 이상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서는 발상이나 태도의 전환부터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 책에서는 핵개인이 되기 위한 핵심적인 자세와 실천 방안을 다각도로 제시하지만, 나에게 키 메시지로 다가온 것은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AI를 도구로서 활용하고 공부해 보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것을 AI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이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융합적 사고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 들였다.
저자의 또 다른 시대예보인 《호명사회》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독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