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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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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혜 Apr 24. 2024

(1) 울지 않는 아이

  “네가 태어난 날, 아빠는 종일 술을 마셨어. 딸이어서.”

언젠가 엄마에게 들은 말이다. 엄마는 시할머니, 시어머니, 일하는 일부들의 밥을 하며 우리를 키워야 했다. 나는 늘 방바닥에 눕혀 있었다. 배고파서 울면 나에게 눈길을 주고, 배를 채워주고는 다시 나를 방바닥에 눕혔다. 엄마는 내가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다고, 그래서 하루에 눈을 마주하는 시간이 손을 꼽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재롱을 떨면서 예쁜 행동을 하면 한마디 했다.

“딸이 있어서 이런 건 좋네.”

바닥에 있던 쓰레기를 청소했을 때, 담배 심부름을 하고 왔을 때 아빠는 말했다.

“딸이 있으니 이럴 때 좋아.” 

딸에게 관심이 없던 아빠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날이면 마음이 놓였다.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어떤 역할을 해내면 아빠가 눈길을 준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그것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유치원 시절, 나는 활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고무줄놀이도 앞장섰고, 높은 계단에 친구들을 앉혀 놓고, 춤도 가르쳤다. 지나가던 학습지 선생님을 집에 데려가 우리 엄마한테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집 뒷산은 봄이면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했다. 어느 날인가 우리 집을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서 비닐봉지를 챙겨 들고 혼자 산으로 향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비닐봉지에 아카시아 꽃을 담기 시작했다. 비닐봉지에 가득 차기 시작했을 때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산 관리하는 아저씨였다. 

“거기, 그렇게 꽃을 따면 안 돼. 당장 내려와. 혼내 줄 거야.”

내 키보다 훨씬 큰 아까시나무에서 뛰어내려 숨도 쉬지 않고 냅다 달렸다. 걸리면 죽는다. 걸리면 죽는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는지 15분이 넘게 걸리는 집까지 단숨에 달렸다. 아카시아가 담긴 비닐봉지는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담임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따라 재빠르게 행동하고, 그런 내가 선생님 눈에 띄기를 바랐다. 내 눈은 늘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굣길에 선생님이 우리를 교문까지 데려다주실 때마다 나는 제일 앞줄에 서서는 빠르게 아이들 줄 정리를 했다. 그래야 선생님의 손을 잡을 수 있으니까.


  오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다. 개인택시를 하던 아빠는 일도 뒤로 하고 시합을 따라다녔다. 시합일지까지 쓰면서 아빠는 감독처럼 오빠의 야구 시합에 모두 참여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난 아빠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해달라고 했다. 아빠는 시험 점수가 90점 이상이면 배우게 해 주겠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은 날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험지를 들고 아빠에게 뛰어갔다. 아빠는 세차하고 있었다. 

“아빠, 나 100점 받았어요. 피아노 해 줄 거지요? 와, 100점이다.” 

시험지를 들고, 팔짝팔짝 뛰며 나는 “와, 신난다! 와 100점이다!” 쉴 새 없이 말했다. 

아빠는 택시를 닦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피아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오빠의 야구를 위해 돈이 들어 나의 피아노학원을 위한 돈이 없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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