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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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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혜 Apr 30. 2024

(2) 조용한 아이

  엄마 아빠는 자주 싸웠다. 어린 나는 무엇 때문에 싸우시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는 오빠는 집에 없었다. 나만 있었다. 무서워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방이 여러 개라도 있으면 다른 방에 가서 안 보이게 있으면 되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 날이면 담배 심부름을 시키시곤 했다. 점점 난폭해지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날 엄마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나는 엄마·아빠의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아빠는 쇳덩이 재떨이를 나를 향해 던졌고, 다행히 내 얼굴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빠의 옷을 계속 물려 입었다.

예쁘게 원피스를 입고, 머리띠를 하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레이스가 어깨에 달린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어 엄마를 엄청나게 졸랐다.

계속계속. 여러 번.

그 결과 분홍색 원피스를 얻어냈다.

어깨에 레이스가 있고, 허리 뒤로 리본을 묶을 수 있는 원피스와 레이스를 여러 번 만지며 거울을 봤다.

앞으로 보고, 뒷모습도 보고, 치마를 활짝 펼쳐서 공주들처럼 앉아보고.

원피스와 하얀색 예쁜 레이스가 달린 양말을 처음으로 신고 학교 가던 날. 남자아이들은 하교한 후에 콩알 탄으로 여자아이들에게 장난쳤다.

“야, 하지 마. 깜짝 놀랐잖아.”

남자아이 중의 한 명이 던진 콩알 탄으로 내 양말에 구멍이 났다.

‘앗, 내가 처음 신은 레이스 양말인데.’ 혼내주고 싶었다.

때마침 고물상 아저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저씨,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그만하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제 양말에 구멍이 생겼어요. 제힘으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아저씨가 그 친구의 가방을 잠시만 가지고 계셔 주시면 안 될까요?”

아저씨는 그 못된 아이의 가방을 고물 더미 위에 올리고 손수레를 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 마음을 가볍게 하고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아이가 전속력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 친구가 날아올라 나를 발로 찼다.

나는 허공으로 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울면서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말했다. 밤새 허리가 아팠다. 엄마는 그 아이 집에 찾아가 보상을 받자고 했다.

다음날, 그 아이 집으로 갔다.

그 친구는 아빠의 친구 아들이었다. 보상이라는 단어는 언급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치료도 받지 못하고 구멍이 난 양말을 꿰매 신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냥 참고 견뎠다. 나아지길 바라며.   

  

  엄마·아빠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딸기가 있었다. 딸기 모두를 씻어서 엄마아빠를 기다렸다. 엄마는 딸기를 보더니 “그 많은 걸 다 씻었어? 미리 씻어 놓으면 다 물러서 어떻게 할 거야? 아휴~”

나는 조용히 듣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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