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없다

잃기 전에 미리 얻어두는 법

by 호미오

퇴사 직후, 휴식을 갖기는커녕 회사원보다 더 바쁘게 한 달을 살았다.

막혀있다 뚫린 도로에 나온 것처럼, 발산하는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기느라 눈코뜰 새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팔, 다리를 뜻대로 움직이고 입으로 밥을 먹고.. 이런 것들을 우리는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약간이라도 생긴다면, 그 당연한 것을 의심하게 된 상황 자체에 당황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끙끙 앓다가 낫게 되면 행복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없던 것을 갖게 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오래 보지 못했던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면 더 사랑스럽다. 없던(?), 아니, 작아졌던(으로 순화하자^^) 사랑이 다시 생겼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부부가 더 금슬이 좋다는 의견도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렇게 다시 찾게 된 건강은 원래 나의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얻게 된 것인가? 사랑의 감정은 원래 있는 것인가, 새로 생겨나는 것인가?


나의 사례로서 ‘자신감’과 ‘당당함’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자.

이 속성들은 나에겐 당연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쭉 그래 왔다. 그런데 내 팔, 다리만큼이나 당연한 이 속성들이 약간이라도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면?

이것은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움직이고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니다.

다행히 잘 태어났기 때문이다. 끼니를 챙겨 먹고 에너지를 유지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가 수없이 많다. 당연하지 않다.

자신감과 당당함이 당연하다고?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현실이 있었으며, 자아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해서 나에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나라는 사람이 조직에서 하나의 기능으로 상징되기도 하고, 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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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는 원래 인기가 많다고? 그럴 확률이 높긴 하겠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조금만 실수해도 평범한 사람보다 더 큰 욕을 먹기 십상이다.

연예인이라서 돈을 많이 버니까 당연히 행복한 거라고? 아니다. 공인으로서 매사에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제약 속에서도 행복하려면 더 큰 노력이 따를 것이 분명하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큰 “노력의 대가를 치렀고 현재도 치르고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고, 제삼자가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우리 몸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자.

턱걸이 5개도 못한다고 상대방 무시하지 마라. 그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당연히"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턱걸이 15개 한다고 “원래 튼튼한 사람"이라고 하지 마라. 그 사람은 그것(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상태)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 왔음이 틀림없다.

타고난 유전적 경향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위의 사례들을 포함한 이러저러한 것들은 모두 당연한 게 아니다.

그 말인즉, 우리가 “원래"라고 느끼는 것들은 쉽게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꾸준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나는 이 자명한 사실을 잠깐이지만 잊고 지냈던 것 같다.

퇴사 후 환경이 바뀌면서, 원래 나의 일부라고 여겼던 속성들이 자연히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찾아온 것이다.

내가 가진 ‘자존감'을 토대로 자신감과 당당함이 쌓인 것인데, 이 자존감을 원래 달린 내 팔다리인 양 생각했다. 심지어 팔다리조차 이렇게 달린 게 당연한 것이 아니거늘.

원래 내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 속성들은 오랜 시간 동안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경우가 많고, 나의 내면적 특질도 내 노력의 결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연히 유지되었던 자존감은 “자동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에너지가 투입되었기에 그것이 쭉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회사의 업무 환경 덕분에 “나만의 시스템 없이도" 에너지를 자연적으로 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존감을 생성하는 에너지는 스스로 만든 방식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지만, 회사 환경의 힘이 컸기에 부가적 노력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을 테다.


그러면 무엇이 바뀌었길래 내 자존감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자존감의 먹이를 주던 환경이 사라졌으니 나만의 시스템을 가동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체중을 감당하는 고된 훈련을 평소에 하는 군인은 턱걸이 연습을 하지 않아도 평균은 한다. 그러나 전역 후에도 턱걸이 실력을 유지하려면 따로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

근력운동을 하지 않고 굶게 되면 종래에는 지방이 아니라 근육이 줄어들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다행인 것은, 원래 내 것이라고 여길 만큼 자연히 스며들어 있던 속성이라면, 과거에 그를 얻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지를 알고 있다.

헬스 PT를 받아서 좋은 몸을 얻은 뒤에 그 상태를 오랜 기간 유지한 경험이 있다면, 언젠가 PT를 그만두게 되어도 스스로 그 몸을 유지할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감과 당당함을 보너스로 만들어내는 자존감이란 녀석이 유지되고 향상되게 하는 “나의 시스템"을 재가동할 때가 왔다.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성장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자존이 자라는 모임을 시작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를 유지하기 위한 정체성, 그리고 그 정체성을 강화하는 루틴을 실행 중이다. 계속적인 개선, 보완을 통해 더욱 향상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포인트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어떤 속성이 자연히 유지된다고 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체적인 관리를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기에 미리 그것을 인지하고 자체 시스템도 함께 가동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우리의 강점을 계속 지킬 수 있다.


끙끙 앓기 전에 미리 건강을 챙기는 게 어떨까.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건강함이 유지되려면 나의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의식적 노력을 하자.

사랑을 잃기 전에 일상 속에서 작은 사랑을 조금씩 더해가면 좋지 않을까. 이것은 현재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당연함이 아닌 감사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 감사함에 대한 꾸준한 표현과 마음의 건넴이 필요하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여긴 등산인데, 산 중턱도 못 가서 헐떡거리는 상태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에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겨울철에 외출 시에 보일러를 아예 끄는 것보다 2,3시간에 5분 정도라도 가동되게 설정해 두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낫다. 온기를 아예 잃고 나서 되돌리는 것은 에너지가 크게 소모된다.

무엇이든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기존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것이 당연해 보일 때, 그것들이 과연 “원래 내 것인지” 자문해 보자. 상황이 바뀌어도 “자동으로” 유지되는 속성인지 의심해 보자.

그렇지 않다면 그 속성들이 어떻게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서 노력을 더해보라. 1의 노력으로 20 이상을 얻을 것이다.

이미 좋은 환경이 있다면 그 시스템 덕에 그 속성은 더욱 빛날 것이고, 환경 없이도 자체적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인에게 스며들어 있는 속성이기에,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크게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아주 작은 루틴과 습관을 실행하는 것은 엄청난 효과가 있고, 이것은 멀쩡할 때 미리 준비해서 가동할수록 강력해지는 시스템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당연한 것도 없다.


나를 포함한 독자분들 모두, 잃기 전에 미리 얻어두시길.

흔들림을 느끼는 즉시 더 단단해지시길.

수많은 세상의 변덕 속에서도 안정을 찾는 비법을 실천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