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앉아

불안방이 ‘서재’인 이유

by 이불


1. 불안방이란


불안함이라는 감정은 시도때도 없이, 노크없이 방문하기 때문에 불안방의 문을 열고 닫는 일은 내게 흔하다. 미세한 손끝의 떨림을 느낀 순간이라든가,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음이나 낮은 음에 머물러 있다든가. 보이지 않게 가슴 한쪽이 저릿하다든가. 각자 자신이 입은 옷에 딱 맞게, 남에겐 보이지 않게, 가볍게 소리소문없이 작은 어깨 가방 끈을 조여 매는 것처럼 그렇게 불안은 찾아온다.


처음, 불안방이 '서재'가 된 이유는 단순히 공부할 게 많아서였다. 불안함의 시작점이 '나' 이면서 사람이기도 했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때문에 제대로 사회문제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제대로 짚어보지 않으면 그것이 내 탓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안'에 대해 적힌 책들을 꽂아놓고, 책상에 앉아 불안을 연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불안방을 서재로 만들었다.


2. 불안방의 모습


그러고 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불안방에 꽂힌 수많은 책들이었다. 아이의 안전에 대한 불안, 택시를 타며 느끼는 불안, 여성의 몸으로 존재하며 느끼는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 이유를 모르는 불안 등 불안이라고 이름붙여진 책들이 이토록 많았음을 빽빽한 책꽂이를 보며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불안을 확인하는 시간은 잠깐이었고, '아, 불안이 여기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싶다고 했지만 여유도 없었고, 공들일 시간도 마련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게으르달까. 골치 아픈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다. 특히, 사회문제는 파면 팔수록 내가 손댈수가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한 마음이 남기도 했다. 그래도 (숨 한 번 내쉬고) 내가 잘하는 걸, 한 번 해봐야지. 서재방도 만들었고, 공간이 만들어지면 나오는 용기, 그 용기가 있지 않나. 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동굴도 깊다. 깊고 깊은 마음 수렁의 길.


3. 불안했던 그 순간


화요일 저녁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 한가운데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추워서였는지, 밤시간에 딸아이를 기다리는 불안함을 잠시 잊은 채였다. 내 목소리가 살며시 커지고 있었고, 심장박동의 속도가 오르기 시작했으며, 상대방의 말을 끊어내고 내 말이 뱉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몸의 변화는 지금 내 감정이 '화'로 변해가고 있다는 신호로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감각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잘못이 분명한 일이었고,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결론에 이미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첫째는 학원버스에서 내렸다. 문제는 문제, 그다음부터였다. 아이에게 어떻게 된 사정인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사님이 자신을 내려주는 걸 놓쳤고, 다음 정거장에 가서야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커지고 있던 나의 목소리와 빨라진 심장박동, 미세한 손끝 떨림은 가던 방향을 잃어버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어디보자 너 잘 만났다, 너 그러면 안돼.


4. 불안함이란 가면을 쓴 화


기사님한테 말했어? 어떻게 말했어? 상대방에게 공을 던지는 순간, 손끝떨림이 사라졌다. 기사님께 말할까 말까 고민한거야? 잘잘못을 가리기 좋아하는 입이 튀어나오자, 목소리 톤이 낮아지며 좀 더 엄중한 경고와 조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내 심장박동수를 낮췄다. 내가 너에게 한 수 알려줄게. 공부를 왜 해? 책은 왜 읽어,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한 거잖아. 나는 이미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좀 더 분명하게 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재방 책상에 털썩 앉았다. 도대체 이건 뭘까? 써야 했다. 어린 나를 불러다 앞에 앉히고 물었다.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두려웠지? 말 못하는 순간이 고통스러웠어? 그래서 그렇게 울었어? '나'라는 어린 사람이 애달프게 바라보고 있었을 불안의 이름들이었다. 바로 내가 쓴 책, '이불 불안'. <이불 안>. 이 불안.


5. 다시, 불안방이 서재인 이유


'불안함'이 '화'라는 가면을 쓰고, 어린 사람을 괴롭히자, 그 민낯이 보고 싶어졌다. 불안은 불안인지도 모르게 조용히 다가와 매일 곁에 있었다. 불안은 형태도, 크기도, 감촉도, 무게도 달리하며 일상에 나타났다. 매번 물을 수는 없었다. 어린 사람에게는 그러지 말자는 마음속 규칙이 나를 살렸다. 책상에 앉아 결국 이불이고 만, 고민의 고민을 이어가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게으른 그 이불 맞아? 싶지만.


어린 사람, 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고 얘기하는 그 순간을 매번 놓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분명히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이 귀찮은 일을, 골치 아픈 일을 해본다. 내 용기다 이건 분명. 이불 용기.


이불 안 용기


2025


이전 07화서재 - ‘불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