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마로 처럼 웃었다. 아이처럼 웃어 기쁘다.
(그림설명) 어린 아이처럼
이불
일상에서 나는 ‘웃는’ 아줌마다. "지온이 엄마는 항상 웃고 있어" 첫째 지온이를 학교 앞에서 기다릴 때, 지온이 친구가 내게 건넨 말이다. "지온이 이모는 웃을 때 치아가 다 보여” 이번엔 친한 동생의 딸이 한 말이다. 아이들 눈에도 나는 자주 웃는 사람으로 보이는 듯 하다.
그런데 의외로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조금 놀란다. ‘아, 너희들이 나를 보고 있었구나!’ 먼저는 아이들의 시선에 놀라고, 이어서 ‘맞아. 내가 잘 웃지’하며 또 한 번 놀란다. 마치 이를 잘 보지 않다가 누군가에 ‘이에 고춧가루꼈어”라고 들었을 때 화들짝 놀라는 기분 같지 않을까. 나는 내 안의 ‘웃고, 기뻐하는 나'를 잘 떠올리지 않는 듯하다. 일상에서 자주 웃지만, 그 순간을 곱씹으며 “아까 정말 기쁜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유퀴즈에서 심리학과 교수님이 ‘편향적 사고’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들었다. 마침 글을 쓰며 내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던 때였다. 특히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정적 편향’이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익숙한 길만 자꾸 걸어온 건 아닐까. 그래서 이 개념이 무척 신선했고, 곱씹을 만한 문제라 여겨졌다.
그래서 매일 걷던 길 대신 새로운 길을 걸어보듯, 나는 새로운 마음의 길을 내보기로 했다. 그 시작은 ‘기쁨방’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기쁨방은 거실, 즉 슬픔의 길목을 지나면 보이는 정면에 있는 방이다. 깊고 넓었던 슬픔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나는 기쁨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때 이미 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마치 오래 기다려왔다는 듯이.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17세의 나,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 세월 곁에 있었기에 만남의 순서가 밀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만나려 애썼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흐르는 정적 조차 서로의 울타리처럼 감싸 안으며, 보지 못했던 지난 세월을 잠시 꺼내볼 수 있는 시간.
고등학교 시절, 나는 머리카락으로 커튼을 치고 살았다. 떠올려보면, 코믹 만화에나 나올 법한 어리숙한 '어둠의 소녀’ 같았다. 앞서 언급한 '웃는 얼굴’처럼, 자신의 겉모습을 모른채, 있는 그대로의 마음상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킬 아우라가 약했기에, 최소한 눈 앞이라도 가려야 했던 걸까.
그 머리카락 커튼을 옆으로 밀어내며 말을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너 뭐하니? 얼굴 좀 보자’ 쉽게도 열린 그 문틈 사이로 나는 수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어 제끼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 번은 물리 선생님이 우리를 보고 욕을 퍼부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상관없었으니까.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커튼을 치우고 얼굴을 내보일 수 있었다. 원래도 잘 웃는 상이었기에 친구들은 나를 ‘마시마로’라 불렀다. 그때도 그렇게 잘 웃었다. 고3때 국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장기자랑을 시켰는데, 내 성격으론 도저히 못할 일 같았지만, 나는 노래를 불렀다. 사실 가사를 미리 적어 대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더 부끄러운 건, 그 노래 제목이 박효신의 바보..였다는 사실.
그 노래를 들었던 친구가 지금, 내 옆에 있다. 다행히 이 친구는 윤종신의 팥빙수를 불렀기에 서로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이 친구들과 고등학교 추억을 꺼내다 보면 하루를 꼬박 새워도 부족하다. 나의 슬픔 한가운데를 함께 건너와 준 친구들. 덕분에 기쁨방의 추억들도 마음껏 꺼낼 수 있었다. 웃을 일이 넘쳐났던 순간들. 하지만 잊고 지냈던 시간들.
오랜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슬픈 기억들도 함께 떠올라 눈물이 나곤 했다. 이 날도 그랬다. 그런데 평소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연민하는 나는 있었지만, 그 모습을 봐 준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흘린 눈물이었다. “너 글쓰는 거 좋아했지”, “너한테 그런 면이 있었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어린 시절을 대신 꺼내주는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을 통해 기쁨이 내게로 왔다. 친구들이 건네준 기억의 조각들은, 내 일상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눈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오늘의 삶에서도 기쁨을 찾았다. 첫째 지온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나는 잠시 짬이 나서 서프라이즈로 마중을 나갔다. 반가워하는 지온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걸었다. 나는 물었다. “지온아, 오늘 학교에서 기쁜 일 있었어?” “어” “뭔데?” “엄마가 데릴러 온거” 하며 씩 웃는다. 그렇게 웃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아, 오늘도 기쁜 일이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아이들은 잘 웃고, 쉽게 기뻐한다. 첫째 지온이도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가 너어무 즐거웠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 말에 나도 따라 웃는다. 아이들의 손쉬운 기쁨 속에서, 나는 다시 사람을 통해 기쁨을 배우고 있었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존재다. 그래서 나는 울타리를 치며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처럼 마음을 열고 기뻐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간직한 이들이 내 곁에서 기쁨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통해 기쁨을 얻는 그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다. 그들을 만나 웃을 수 있었고, 오늘도 그런 나를 품은 사람들과 함께 웃을 것이다. 분명 오늘은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