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 ‘희망'방

절망 앞에서, 희망을 말하다.

by 이불

(그림설명)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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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오늘은 둘째, 셋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늘 첫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로 불려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동시에, 첫 마음을 붙잡고 첫째에게 온 힘을 다 쏟아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셋째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절망 한가운데서, 뜻밖에 피어난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둘째가 몸이 좋지 않았다. 배도 아프고, 목도 부었다. 이번 주에만 이가 두 개나 빠졌고, 흔들리는 이도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은 이가 나고 빠질 때 몸과 마음에 큰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피아노 학원에서도 울고, 유치원에서도 울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물으면 대답은 단 하나였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둘째는 늘 씩씩하게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녔다. 그래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이번 주 내내 몸이 안좋으니 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정말 ‘엄마가 보고 싶어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말 뒤엔 분명 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매일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일곱살이어서, 불안이 많아져서,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혼자 무언가 해내는 일이 두려워서..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둘째는 발레를 배우고 싶어했다. 마침 주말에 배울 기회가 생기자 아이는 무척 들떴다. 함께 보라색 발레복도 고르고, 공주처럼 포즈를 취하며 설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던 모습이 선명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옆에 있어도, 단짝 친구가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 수 있어”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속삭였다. 엄마, 못하겠어.

다른 엄마들이 이런 상황을 마냥 이해해 주지만은 않는다는 선생님의 귓속말이 나를 더 바쁘게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주는 일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결국 아이를 몰아붙였다. "이럴거면 안배우는게 나아. 하고 싶다고 해놓고 이러는 거면 집에 가자, 엄마 지금 나간다. 너 할거면 똑바로 해." 눈빛으로 호소해도 아이는 여전히 울상이었고, 나가지 말라며 고개만 저었다.

내 마음도 아이의 얼굴처럼 울상이 되었다. 그 순간, ‘절망'방의 문이 다급히 열렸다. 이 방은 낯설지 않았다. 첫째를 키우며 수도없이 마주했던 곳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밀려오는 공포는 시간이 흐르며 절망으로 변했다. ‘나 하나 돌보기도 벅찬데, 내가 책임져야 할 또 다른 생명이라니.. 아이는 자주 울었고, 나는 그 울음의 절벽 끝에서 함께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둘째, 지유로 인해 ‘절망’방 앞에 선 건 처음이었다. 서러운 울음이 방 안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가자, 내 안의 목소리가 아이의 울음을 거세게 막아섰다. 울지마! 매몰차고 강한 외침이었다.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 목소리 뒤로, 파란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위에 잠시 앉아 숨을 골랐다.

'우는게 어때서? 너도 울어봤잖아. 아이는 말 대신 우는 거야. 지금 지유는 할 말이 있는거야. 그냥 들어줘.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해, 기다려 줄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다. 두 번째니까. 두 번째는 더 쉽고, 힘을 덜 들여야 한다고. 그런 생각들이 한켠에 늘 못처럼 박혀 있었다는 걸, 숨을 고르니 비로소 보였다.

어느 날, 둘째 지유가 침대에 누워 물었다. “엄마, 우리는 왜 생겼어? 사람 말이야. 사람은 왜 생겼어?” 갑작스런 질문에 조금 놀랐다. ‘아, 존재를 고민하는 때구나. 너가' “너의 생각은 어떤데?” “음.. 배우려고?” 피아노도, 발레도, 새로운 것도 연습해야 한다는 말을 이번 주내내 들었더니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다. 곧이어 말했다. “하늘나라님 있잖아. 혼자 있는게 좀 그래서, 친구들을 더 만들었나?” 삼남매가 침대에 함께 누운 밤이었다.

지유의 질문은 내 안에 오래동안 켜지지 않았던 불을 밝혀주었다. 마음의 집을 더 열심히 쓸고 닦았다. 베란다의 '둘째 존재등’도 밝게 켜졌다. 그렇게 그 빛은 잊고 있었던 셋째의 존재와도 이어졌다. 셋째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안타깝게도 ‘절망’방의 문을 두드렸다. 팔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누군가를 원망했고, 기대했던 내 미래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물거품처럼 내 인생도 희미해질거라 믿었다. 내 마음의 집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나는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지만.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무릎까지 빠진 검은 진흙을, 나 홀로 헤치며 걸어나와야 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은 나를 살렸다. 셋째의 태명은 ‘희망’이었다. 희망아. 희망아. 그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늪에서 끌려나오는 듯했다. 희망아, 희망아. 생명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첫째, 둘째, 셋째. 마치 내가 세 번을 태어난 것 같았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희망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랬다. 희망은 절망 속에 있었다. 절망의 늪을 홀로 건너야만 비로소 보이는 작은 불빛처럼. 슬픔을 건너면 기쁨이 있듯, 절망의 끝엔 희망이 있었다.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빛. 나에겐 어린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무엇일 그 존재. 나는 오늘도 마음의 집을 쓸고 닦으며 기다린다. 그 빛을 볼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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