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옥상에 올라

마음 탐험하기

by 이불

마음 탐험하기

갑자기 아팠다. 최근 들어 꾸준한 런닝으로 건강을 자부하고 있었는데. 주말이었고, 홍천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후였다. 새벽에 깨보니 묵직한 배가 말을 걸어온다. 퉁퉁. 배로 집중되는 온 신경들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오늘도, 나는 마음의 집에 들러 멀리 보기 위해 옥상에 오른다. 옥상에 오르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 마음의 바다. 지구의 중력이 나를 잡아당기 듯, 내 마음의 물결침에 흔적을 남긴다. 거친 바닷 바람 소리를 세상에 안고, 하얀 거품이 이는 물결을 바라본다. 모든 걸 휩쓸어버릴까 겁이 나지만 하얗게 일어난 파도는 부드러운 모래를 감싸안는다. 진정된 바닷물은 꺾여 흐른다. 바다를 본다. 그렇게 내 마음을 본다.

고통을 마주할 때면 익숙한 반응들이 마음의 길을 낸다. 고통이 아주 연약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내 반응은 비슷한 길을 찾는다. 불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길이 가장 자주 가는 길이고, 펑펑 울어버리는 길도 종종 생긴다. 왜? 무슨 이유로? 라고 묻는 생각의 길도 탄탄하다. 오늘은 마음의 집, 옥상에 올라 바다같은 내 마음의 흔적을 따라가보려 한다.

몇 걸음 걷는다

그리고 묻는다 반응한다

왜 아프지?

어디가 아프지?

몸이 잠시 멈춘다

어제 먹은 고기 때문인가?

또 잘 안익은거 먹

었나? 곱창도 먹기만 하면

장염이 나니까 대변을 못봐서 그런가?

요거트를 먹을껄 아...

아랫배에서 묵직하게 치고, 왼쪽에서 한

번 치고, 오른 쪽에서 한 번 치고

생각을 묻는 길은

끝이 없다. 원인도, 결과도, 과거도, 미래도

한 번에 가져다 더 아프게 땅 때린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말하지?

다시 몸이 멈춘다

잠시 기달려봐 아침이 오자나

괜찮아질거야

아.. 안좋네 걸을 수 있네, 먹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거야 잘하고 있어

주변을 묻는 일은

시도때도 없이 나를 올가매는 듯 보이지만

그 역시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함을 다시 묻

고서야 알아챈다.

종착역에 다다른 듯한 곳에 이르렀을 때

누구나처럼 나는 그 길로 간다

내가

힘들어

꽉 붙잡고 있던 나를 연민하는 시간은

잠시 미뤄둔다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질

않아. 후에 누군가를 만날거야

그 때 말하자 지금은 좀 참아

바다에서 물결치는 내 마음은 하얀 파도가 넘실거리듯, 그 자리를 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길은 자연스레 생기니까. 이렇게 통증이 오는데도 스케쥴을 다 소화했다는 미련한 뿌듯함이 나의 모습인 것처럼. 정말 많이 변한,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칭찬거리를 가득 담는 기쁨처럼. 하루 쉬며 복통의 온기를 좀 더 느끼며 너를, 몸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은 슬픔처럼. 그렇게 나답게. 흘려보냈다.

월요일 아침부터 부리나케 달려가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왜 시중에 파는 약들은 바로 효과가 안나타나는 건가요?" 약을 먹었는데,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장염을 치료하는 약이 딱 있지는 않아요. 병이 좀 완화되는 데 시간을 벌어줄 뿐이죠." 나는 사실 약을 잘 안먹는다. 약에 길들여지는게 무서워서. 이 고통을 정확히 모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약이 필요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이기에 그 시간을 벌고 싶었다.

올 한 해, 내겐 글이 약이었다. 마음의 파도가 세차게 몰아 칠 때에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쓰다보면 느껴지는 이 희열, 완성감. 내 마음에 집을 짓고, 그 안에 둘러앉아 어떤 방을 만들어볼지 상상하며 시작되는 손맛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나의 세상을 구경하러 와주는 이들까지.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2025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쓰고뱉다에서 해낸 일이다.

나의 애정하는 글친구들의 말을 길어 올려 놓아본다. 이 분들의 말은 나에게로 와서 반향을 일으켰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것은 분명하다.

여름 중에님 "이렇게 이불님은 나의 슬픔 블루투스가 되었다. 나대신 울어주는 사람 제일 좋아요." 유니크한제이님 "검은 진흙을 헤치고 기어이 이곳으로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맑은님 "마음에 관심있는 따뜻한 마음의 소녀, 그리고 어른입니다." 다시 봄님 "이불님들의 방들이 제 방도 슬며시 열어주고 계신거 진정 아실까요." 난나님 "저 또한 뭔가 모르게 좋네요~ 이불님의 시^^" 반려산소통님 "두려움이 빛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 그림마저 빛으로 다가옵니다" 리다봉님 "저도 쓰고 삶을 품고 싶어졌어요." 쓰니신나님 "내 마음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덮어주려는 그 이불을 저도 한번 푹 덮어 보겠습니다." 밸류 님 "삶을 성찰하고 성장시키는 두개의 평행선을 잘 달려나가고 계시네요." 무철님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그리고 못하는게 없으신 이불님~" 느리미님 "슬픔방이 거실만큼 크지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공간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보물세개님 "저희 딸도 저때문에 서운함이 많겠지요" 영심이님 "친구얘기, 고등학교때 얘기, 아이얘기, 마치 마시마로처럼 포근한 얘기같아요." 김싸부!! "글의 형식으로 파도를 표현한건 천재적이네요"


그리고 뒷모습만으로 충분한 사랑하는 지온유민, 이 글을 쓰게 도운 신랑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 몸과 마음의 길을 열어주신 포이에시스, 모미나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음의 집에 놀러와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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