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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Nov 18. 2020

<책, 이게 뭐라고>

를 읽고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가 구분되어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중 하나에 더 많이 속할 것이다. 혹자는 읽고 쓰는 세계에 속한 자신이 다른 세계의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고 일관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행복의 속성을 무기로 내세울 수도 있겠다. 양 쪽의 주장이 어쨌든 지금 우리는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 읽고 쓰는 세상에 속하는 사람임을 자처한다는 것은 꽤나 용기 있는 결정이다. 마지못해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우울한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이 눈 앞에 놓여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읽고 쓰는 세계에서는 눈 앞의 즐거움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사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은 눈 앞에 뭐가 놓여있는지 보고 판단할 겨를도 없다. 단지 그 세계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은 먼 미래 또는 아득한 과거, 그리고 그 시간 사람들의 평가뿐이다.

물론 그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읽고 쓰는 세계의 사람임을 자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철학, 도덕, 감정에 매력을 느끼는 탓이다. 그것만이 끝없이 변화하고 산화되는 말하고 듣는 세계와 구별되는 소중한 가치라고 굳게 믿는 탓이다.

양 쪽의 세계를 이리저리 탐험하며 때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말하고 듣는 세계에 속해있을 때는 즐거움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의미 없이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느낌과 이 순간들 중 얼마나 내 기억에 남을 것인지 걱정한다. 그런 이유로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읽고 쓰는 세계에 돌아와 마냥 행복한 것은 또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현실감이 결여된 채 사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평행우주가 정말 있다면 모를까, 한 줄기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기에 나는 언제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반성으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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