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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Jan 25. 2021

[책 한 구절 | 떨림과 울림]

우연에 맡기는 하루 살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지구 상에서 물체가 1초에 4.9미터 자유낙하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라는 숫자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 4.9가 아니라 5.9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오늘은 과학책을 가져왔습니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입니다.


김상욱 교수는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기도 하죠. 거기서 김상욱 교수는 과학자이지만 차갑고 딱딱한 이야기 대신 과학과 인간의 연결고리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보여줘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 또한 과학 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들이 인간의 삶과 역사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적어 내려갑니다.


한편으로 오늘의 구절은 허무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형이상학적인 것 중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 것은 아무것도 없다니요. 인간이 전 우주적으로 선택받은 존재라고 믿는 분들에게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지구가 태양에서 딱 적절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고, 또 대기가 딱 적절한 산소 농도로 이뤄져 있는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연속이 아니던가요? 그 모든 조건들이 결합할 수학적 확률은 말 그대로 기적적이죠. 하지만 과학적으로 본다면 무한에 가까운 공간과 시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과학이 보통 그렇듯 낭만적인 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실이 어떻든 우리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에 자신만의 의미를 욱여넣기도 하고, 어떤 의미를 마치 삶의 목적인 양 믿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실제로 의미가 있냐, 없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의미가 내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뭐 어떤가요? 내가 의미를 갖도록 결정한 순간, 이미 그 의미는 존재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요?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의 계획과 선택으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는 설명에서 일종의 위안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꼭 특정한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 같이 들렸기 때문인데요. 우리는 그저 우연적으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어떤 방식의 삶도, 결말도, 어떤 믿음도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절대적인 믿음과 책임을 머리 위에 이고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무수한 우연으로 이뤄진 우주에서 하루쯤 그저 우연에 맡기며 살아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연으로 이뤄진 그 하루의 끝이 더 기대되도록 말이죠.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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