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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Feb 14. 2021

[책 한 구절 | 어른의 어휘력]

상대방의 영혼을 일으키는 칭찬하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칭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칭찬은 하기에도, 받기에도 기분 좋은 일이죠. 물론 칭찬 자체가 상대방을 긍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칭찬이 더 좋은 이유는 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인이 되고 나선 칭찬받을 일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성인들이 칭찬을 받기 위해 어렸을 적 하던 구몬이나 눈높이 같은 학습지를 한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도 마지막으로 칭찬받은 기억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칭찬과 관련된 오늘의 구절은 책, <어른의 어휘력>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잘한다’는 평가보다 ‘고맙다’, ‘기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감동했고, 새로운 선택을 했을 때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익은 격려보다 ‘나는 너의 앞날이 참 기대된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기운이 났다.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쁘다’는 내용을 가진 말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다. ‘네가 참 잘했다’는 말보다 영혼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

(중략)

과정에 공감하고 노력에 감동하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듣는 이의 영혼을 환하게 밝혀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준다. 대차대조표만 들여다보는 악덕기업주처럼 주제넘게 말하지 말자. 누구도 남의 인생에 대해 평가할 권리가 없다. 서로를 축하하고 축복할 구실을 찾자.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처럼.]


성인이라면 칭찬을 가뭄에 콩나듯 받게 되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은 ‘잘했다’, ‘수고했다’ 등의 말이었을 겁니다. 아니면 회사에서 주는 S부터 D 사이의 인사평가이거나요. 오늘의 구절처럼 그런 것들은 칭찬이라기보다 평가에 가깝습니다. 인사평가를 확인하고 나서도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가는 감동이 덜하고 칭찬은 감동이 더한 이유가 뭘까요?

평가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불안한 상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칭찬은 변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긍정이지만, 평가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일시적인 긍정이기 때문입니다. 즉, 칭찬은 평가보다 존재의 본질에 가까운 긍정이고, 그런 만큼 그 감동도 크고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순수한 칭찬이 필요합니다.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닌 내 노력과 과정을 긍정하는 선의의 말이 필요합니다. 회사 동료에게는 “이번 프로젝트 잘했다.”라는 말 대신 “네가 있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라고 말해주고,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아이에게 “잘했어. 정말 똑똑하구나.”라는 칭찬보다는 “엄마는 네가 열심히 고민해줘서 기뻐.”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이왕 할 거라면 상대방의 영혼을 밝히는 칭찬을 하는 게 낫겠죠.

여러분도 아마 칭찬에 목마르실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나도 세상에 제대로 된 칭찬을 많이 풀어놓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칭찬이 말라 가는 세상에 여러분도 일조하진 않았나요?

오늘은 시들어가는 식물에 물을 주듯 주변의 영혼을 칭찬으로 밝히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숙제강박이었습니다.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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