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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May 22. 2020

사노비냐, 공노비냐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큰 기업에서 8년가량 근무했다. 그리고 세 달 전 회사를 떠나 내 사업을 준비면서 창업에 대한 소회를 남기고자 브런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사업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브런치에 남길 글감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에 반해 8년이라는 나름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회사원으로서의 경험은 아직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는 바, 회사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그 감정의 원인들을 떠올리며 그에 대해 남겨보고자 한다.




회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 소유의 회사에서 일했다. 물론 이 회사도 주식을 발행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주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실제 소유자가 개인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창업주의 아들의 아들이 대를 이어 대주주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총수 회사’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그 총수가 회사의 주인처럼 받들어진다.


8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그 회사에 총수가 있는지 여부는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이고 복지 좋으면 됐지 다른 건 따질 겨를도, 그럴 힘도 없었다. 아마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도 같은 입장일 거라 생각한다. 총수의 유무가 별 거 아닌 문제인 것 같지만 내가 회사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꽤나 중요해진다.


금연을 해 본 사람은 잘 알 거다. 금연에 실패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금연해서 뭐해?’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담배를 며칠 안 피우면 느껴지는 어지러움,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워져 있을 때의 적당한 감촉, 식사 후나 배변 중에 느껴지는 담배에 대한 욕구 등등 일차원적인 그리움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참을만하다. 그런 느낌들이 쌓이다 쌓이다 결국 ‘금연해서 내가 뭘 그렇게 건강해져 보겠다고, 담배 피우면서 행복한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금연은 바로 실패다. 의미를 잃는 순간 모든 행위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총수가 있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일 하는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일이 힘들거나 사람이 힘든 건 총수가 있는 회사의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사업하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공무원은 힘들 때 내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사업하는 사람은 힘들 때 내가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견뎌야 할 당위성이 생긴다. 하지만 총수 회사의 회사원들은? 의미를 찾으려면 조금 더 세뇌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사노비지만 그래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조금 구차하게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구차한 세뇌는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변명거리를 갖다 붙여도 결국 난 개인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니까.


물론 복잡하게 얽힌 자유 경제체제 안에서는 내 경제적 행위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기업에서 일하며 발생시키는 경제적 성과는 기업의 수많은 주주들의 보유 주식 가치를 미약하게나마 높여줄 것이며, 수많은 협력사와 그 종업원들의 발전에 아주 미약하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나아가서는 국가 경쟁력 제고와 국가 재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매일매일 힘들게 일하는 개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생각은 아니며, 어떻게 생각을 발전시켜도 내 노동 행위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건 결국 총수다.


친한 회사 동료들은 내가 너무 생각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돈 벌려고 다니는 회사인데 생각 없이 다니면서 월급이나 받으면 되지 그렇게까지 생각해서 뭘 얻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안 되는 성격인 나 같은 사람이 문제인 거다. 일에서 의미를 찾는 성과 없는 짓 따위는 그만두고 월급에 만족하면서 회사를 다녔으면 나도, 아내도, 아이도, 양가 부모님들도 모두 행복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한번뿐인 내 인생이 조금 더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단상]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앞선 글에서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충분히 이야기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경제적 이익 이외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즉,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을 폄하하거나 나오라고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회사를 다녔던 내 8년간의 개인적인 소회를 솔직하게 전해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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