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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May 06. 2020

좋은 동업자의 조건

사업가들이 부인이나 남편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동업자다.

흔히들 창업의 과정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아이러니한 설명으로 동업자를 표현하곤 한다.


실제로 우리는 동업자와의 관계가 틀어져 사업이 흔들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곤 한다. 유수 글로벌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다룬 책에서도 심심치 않게 한 챕터를 할애해 다뤄지곤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산업 구조의 특성상 혼자서 하는 창업보다는 나와 다른 능력을 갖춘 동업자와의 협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동업자가 좋은 동업자인가? “나와 다른 직무적 특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에 몰두하는 성격이어야 한다.” 등의 대답들이 가능하겠지만, 그런 대답은 많은 창업 안내서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 듯 하니 이번 글에서는 내가 창업을 과정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의외의 면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아직 창업을 준비 중인 예비 사업가로서 사견을 늘어놓는 것이니 의견이 다른 선배 사업가님들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1.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한다. 

 창업의 과정은 지루하고 고되다. 특히 경제적으로 그렇다. 일정 수준의 순이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 지루한 준비 과정을 경제적인 압박 없이 버텨내려면 나도 그렇지만 동업자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한다. 내가 여유롭더라도 동업자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창업을 뒷전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둘 중 하나가 당장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잘못된 사업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와 동업자는 행복하게 자랐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다. 다만 둘 다 약 8, 9년의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그 와중에 둘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자금사정이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안정적인 가정과 아내의 고정수입을 이뤄놓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둘 다 경제관념이 꽤 있는 편이라 1년 정도는 수입 없이 준비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준을 만들어 놨다. 덕분에 돈에 쫓겨 사업 준비를 급하게 하지는 않는다.

일하다가 식사 시간이 나는 경우라면 밥도 꽤나 잘 챙겨 먹는다. 돈에 쫓겨 라면이나 김밥으로 밥을 때우진 않는다. 한 끼를 먹어도 깔끔하고 친절한 곳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근처 맛집에서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식사를 하면 데이트하러 나온 듯한 느낌도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의 곤두섬이 누그러진다. 일하다가 겪는 잠깐의 휴식이 달콤하면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기꺼워지고, 전체적인 창업 과정에서 마음이 크게 무겁지 않다.


2. 나와 공유하는 기억이 많아야 한다.

 동업자와의 다툼이 많다면 사업은 옳게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다툼인 경우에만 그렇다. 서로의 의견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피차 알지만, 다툼이 잦아질수록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섞이게 된다. 감정이 섞인 상태에서의 다툼은 진흙탕 싸움이다. 상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대로 양보하다가는 내가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반대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의견의 옳고 그름 따위보다 언쟁에서의 작은 승리감을 위해 밀어붙이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이겨봤자 남는 건 미안함과 자책감뿐이다.

 감정이 상했을 때 그것이 사업의 존립 문제로 연결되지 않으려면 결국 이해하고 푸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리고 더 잘 이해하고 풀기 위해서는 이 사람과 내가 공유하는 기억이 필요하다. 언젠가 동업자가 화를 냈거나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다면 그때를 되새기며 지금의 그를 이해할 수 있고, 하다못해 기억을 끄집어 내 그 이야기를 매개로 화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오래 연애하고 결혼한 부부가 다투고 나서 연애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뉘우치고 화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업을 하면서 첨예해지기 훨씬 이전, 그 여유로웠던 시절에 서로에게 친절했던 기억은 웬만한 다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마법이 된다.

 나와 동업자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같은 학원에서 만나 공부와 당구(?)를 통해 친목을 다졌고, 대학시절에도 종종 만나 서로를 응원하곤 했다. 이 얼마나 어리숙하고 꽃다운 시절의 만남이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보다 더 오래도록 같이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3. 일머리가 있든 없든 나와 비슷해야 한다.

 동업자는 창업 과정에서 보통 나와 다른 업무를 맡게 된다. 같은 업무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특성상 보통은 동업자끼리 특정 영역을 나눠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동업자들의 역할은 마치 회사에서 유관부서의 역할이 된다. 한쪽이 일을 처리해서 넘기면 다른 쪽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일을 처리하고, 또 그것을 다시 돌려받아 일을 진행시키는 순환적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일머리가 비슷하지 않으면 서로 생각하는 질과 속도에 간극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일머리는 사전적 의미로 노하우나 업무능력 등을 지칭하는 말이니 결국 다르게 표현하자면 ‘업무능력’ 정도가 되겠다. 둘 다 일머리가 좋아 간극 없이 빠르게 공을 주고받으면 가장 좋겠지만, 둘 다 일머리가 부족하다고 해도 랠리는 느리게라도 이어진다. 문제는 한쪽의 일머리가 다른 쪽과 큰 차이가 날 경우다. 일머리의 차이는 업무의 병목현상을 불러일으키고 한쪽은 답답함과 불신을, 다른 한쪽은 업무 과중과 자신감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체적인 사업의 속도와 질은 어차피 일머리가 덜한 쪽에 맞춰지기 때문에 일머리가 둘 다 없는 경우와 큰 차이가 없다.

 

4. 패션 센스가 있어야 한다.

 패션 관련 사업이 아닌 경우에야 창업과 패션이 무슨 관련이 있겠냐 싶겠지만, 패션은 참으로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필연적으로 창업자들은 제품과 서비스의 최종적인 컨펌을 하는 자리에 있다. 최종적인 컨펌뿐만이 아니다. 개발과 수정의 모든 단계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한다. 거대 기업에서 수많은 직원들의 의견이 모아져 하나의 다듬어진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택의 과정에서 나와 동업자의 취향만이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된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럽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런 중요한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는 동업자가 만약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대중들이 열광할만한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떨까?

 패션 센스는 그 사람의 취향이 대중적으로 먹히느냐 마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튀는 하이패션은 안된다. 충분히 대중적이면서도 적절히 세련되고 앞서있어야 한다. 그가 컨펌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성공하길 원한다면 그래야 한다.


5. 말이 많아야 한다.

 대기업을 다닌 나는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다니던 회사에 빗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머인 동업자는 우리 회사의 연구개발 담당 임원이자 디자인 실장으로, 나는 기획실장이자 마케팅, 홍보담당 임원으로 말이다. 또한 우리가 일을 주고받는 회의를 할 때면 유관부서의 팀장들끼리 미팅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둘은 거대 기업의 모든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발전된다. 우리는 사원이자 팀장이자 임원이자 조직 그 자체다.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메시지는 수십만 개에 달하는 기업 전체의 메일이자 메신저 대화이자 쪽지이자 끝없이 이뤄지는 대화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소통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물리적인 시간과 우리의 메시지 처리 능력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메시지의 양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묵한 동업자는 별로 매력이 없다. 과묵한 사람들은 보통 뭐가 중요한 말인지 심사숙고하고 정제된 메시지를 내놓는 능력이 탁월하다. 물론 그런 능력은 대인관계나 회사생활에서 중요한 자질로 꼽힌다. 하지만 창업에서는 다르다.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아닌지 판단할 시간이 없다. 동업자와 나는 작은 생각 하나까지도 공유하는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 언제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대화들이 모여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열거한 좋은 동업자의 조건은 물론 나만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그에게는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창업을 시작하면서 동업자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 적이 있다. 작은 언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였다. 그간 동업자를 나와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해왔었다. 권리도 책임도 절반씩 나누었기 때문에 나도 절반만큼은 주장해도 된다고, 내가 잘못 결정한 벌은 내가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에서의 나’가 아닌 ‘나 자체’를 기준으로 보면 동업자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그는 ‘나’라는 사람을 사면서 그 대가로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업의 절반을 내어 준 것이 아닌가?

남자끼리 낯간지럽기도 해서 이런 얘기는 속에만 담아뒀다. 동업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지 내 1호 고객이 내가 그런 것처럼 나를 중요한 고객으로 대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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