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퇴근 지하철에서는 앉아서 오는 편인데 어제는 유독 자리가 없어 한 시간을 서있었다. 유튜브도 지겨워 휴대폰을 넣고, 앞에 앉은 사람들을 죽 훑어보니 머리 위에 하얀 정수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양갈래로 갈라진 머리카락 사이의 길을 보고 있자니 길게 뻗은 밭고랑의 이미지가 겹쳐졌다가, 산맥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실개천이 보였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구의 정수리는 머리카락이 빽빽하다 싶기도 하고 누구는 넓은 길이 훤하게 드러나 몇 가닥 남지 않은 양쪽의 머리카락들이 위태로웠다. 금방이라도 후드득 쏟아질 것만 같았다.
퇴근길의 만원 지하철은 아무리 좋은 일을 겪은 사람이라도 금세 회의적으로 만들기 충분한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렬로 죽 늘어선, 위태로운 여덟 개의 정수리들이 처량맞았다. 아침엔 머리도 감고 드라이도 해서 볼륨감 있는 모습이었을 텐데, 어떤 하루를 겪었길래 정수리들이 저리도 지쳤을까. 아마 나와 같았겠지. 먼지도 먹고 열이 잔뜩 났다가 땀도 흘렸을 테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때마다 휘청거렸겠지. 그리고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잊은 채 지하철 자리를 잡아서 운이 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상대방의 정수리를 보고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 건 아마도 평소에는 보기 힘든 앵글이라서였을 거다. 누군가가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경우가 아닌 한 남의 정수리를 볼 일은 거의 없으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90도로 인사할 위치에 있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내가 90도로 인사할 일이나 있지. 그래서 결국 남의 정수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일 거다. 남을 아래에 두고 부릴 수 있는 사람.
지하철은 정수리를 남에게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다. 서로가 서로의 정수리를 보면서 고단함을 짐작하고 마음으로나마 긍휼해하는 장소다. 서있어서 힘든 건 몸뿐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