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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Jan 23. 2022

한 데 모여 밥 먹는 풍경

주말인데  약속도 없고, 이런 날은 가족끼리 집에서 뒹굴대며 놀다가 장을 보러 마트에 가곤 한다. 맞벌이 가정에서 요리는 주말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조금 욕심을  사는 편이다. 요리라고 해봐야 특별할  없고, 그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거나 파스타를  두 가지 하는 정도다.


오늘은 돼지고기를 한 근 조금 넘게 샀다. 얼마 전에 시골에서 김치가 왔는데, 고기와 함께 구워 먹기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내는 장 봐온 채소를 씻고 상을 차렸다. 일요일 저녁인지라 소주는 부담스러워 도수가 낮은 전통주를 한 병 꺼냈다. 아이는 비계와 껍데기가 붙어 있는 부위를 유독 좋아했고, 우리 부부는 얼마 전 봤던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평범한 주말 저녁을 보냈다.


아이와 아내가 잠든 밤, 혼자 서재에서 일기를 쓰다가 문득 셋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평범한 주말 저녁의 풍경에 우리 세 가족의 노고가 얼마나 녹아있는가를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없는 힘까지 쥐어 짜내며 5일을 보냈고,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에 못 갔던 우리 아이는 심심한 5일을 행복하게 겪어냈다. 또 그 아이를 보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육아에 동참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력은 어떤가. 그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평범한 저녁을 가능케 했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면 의미 없는 일이 없다. 원인 없이 일어난 결과는 없으며, 의도 없이 기울인 노력도 없다. 세상은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돌아보면 그 나름대로 방향과 흐름이 있었다. 일상에 둔감해진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의미들이 아쉬울 뿐이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 식사의 의미는 확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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