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능을 보다가 한 젊은 음악가가 사는 모습에 관심이 갔다. 깔끔하게 해 놓고 사는 모습에 먼저 눈길이 갔지만, 그보다 더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기쁘게 낭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 생산적인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긴 시간의 낭비라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잣대이기도 하다. 감히 누가 누구의 시간을 가치 있다, 없다 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나와, 그렇지 않은 젊은 음악가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시간이 매우 한정적이며, 그 한정된 시간 동안 인생은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선형적인 인생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선형적으로 흐르는 인생을 가속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밀도 있어야 하며,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목표에 다다르는 순간은 요원해질 수도 있다. 모든 시간은 같은 길이로 해석된다.
반면, 시간을 입체적, 공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인생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흘러가는 시간이 방향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담겨있는 물에 잉크가 퍼지듯 매 순간은 인생에 스며든다.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도 적용되지만 짧은 순간이 무한히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므로 한정적이라는 말은 절반만 옳다.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시절이 되며, 그것이 인생이 된다고 봤을 때, 결국 시간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인생에서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누구나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한 가지 태도로 일관되게 평생을 보낸다는 건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맹목적이지 못한 우리는 계속 반대쪽을 힐끔거리며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젊은 음악가가 몸소 보여준 유혹에 흔들리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