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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Jul 13. 2020

“올해가 진급 연차인 건 알고 있지?”

육아휴직 통보에 대한 회사의 반응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육아휴직이 보편화된지는 꽤 오래됐다. 그리고 여성 직원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1년을 쉬는 비율이 절반 이상은 되어 보이니 육아휴직이 잘 자리 잡은 제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남자는 아직 육아에 대해 마지노선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남자의 육아는 선택사항이고 아빠가 엄마보다 육아에 전념한다는 것은 칭찬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엄마는 양육자로, 아빠는 주말의 놀이 담당자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주입받는 아이들이 자라서 아이를 낳고 또다시 그런 육아를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사회의 통념을 바꾸는 일은 제도의 개선만으로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는 약 2백 명이 근무하는 우리 본부에서 별 이유 없이 육아휴직을 쓴 첫 번째 남자 직원이다. 나보다 일찍 육아휴직을 쓴 남직원이 있긴 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아이가 크게 아프다고 했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 단순히 애 좀 봐야겠다는 이유로 쉬는 당돌한 직원은 처음이었던 거다.


결심을 굳히고 처음 이야기를 꺼낸 대상은 가장 많은 일을 같이 하는 팀 선배였다. 내가 없어지면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을 사람이기도 했다. 말이 선배지 사실 나와는 입사가 10년 이상 차이나는 고참이었다. 다행히 그는 몇 초간의 침묵 후 “어쩔 수 없지. 남은 사람들끼리 잘해볼 테니 걱정 말고 애 잘 보고 와.”라는 말로 긴장한 나를 달랬다.


다음은 팀장이었다. 평소 내 볼을 꼬집으며 이뻐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던 분이라 더 쉽지 않았다. “저 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시면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하자마자 표정이 굳는 팀장을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제발 날 묶어놓으려고 노력하지 말길,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협박이든 회유든 하려고 한다면 그동안 쌓였던 정에 상처가 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팀장은 “올해가 진급 연차인 건 알지?”라는 말을 꺼냈다. 설마 그것도 모르고 쉰다고 했을까. 어쨌든 나는 그 말을 “네가 휴직에 들어간다면 진급은 누락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씁쓸했지만 내가 포함된 채로 세워놓은 팀장 나름의 계획이 있어 당황했겠거니 생각했다. 또 솔직하고 우직한 사람이라 감정을 드러내 놓고 말한 것이리라, 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 뒤로도 각 담당 실장 및 다른 팀장, 실장들에게 인사를 다 돌면서 어색한 응원을 듣고 나서야 휴직이 결정됐다. 휴직한다는 직원을 막을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질타 대신 응원이 나오긴 나왔다.
놀라운 것은 휴직이 소문난 후 동료 직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물론이요, 아이가 5~6살 된 부모들, 아직 아이도 없는 부모들, 결혼도 하지 않은 후배들까지 문의가 쇄도했다. 그들의 문의를 종합해보면 동료들은 휴직을 통보했을 때 팀장, 실장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눈치 보고 있는 직원들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아이와 함께 보낼 더 많은 시간을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됐다. 물론 내가 빠진다고 해서 직접적인 업무적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슬프게도 회사는 어느 선까지만 가족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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