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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Jul 17. 2020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네

모바일앱을 개발하는 일은 고되고 지난하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가족들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고,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도 쉬는데 생각만큼 사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재정적으로 가정에 기여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마음만 급해진다.  

당초 4월 말에 런칭하려고 했던 앱은 별의별 문제들이 발목을 잡으며 8월 출시로 미뤄졌다. 4월에는 휴대폰 기종에 따른 호환 문제를 처리하느라 두 달 밀렸고, 6월에는 디자인 외주가 늦어져서 한 달을 미뤘다. 또 7월에는 안 쓰던 서버가 누군가에게 해킹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 다른 계정으로 서버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문돌이인 내가 개입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프로그래머들을 독려하면서, 외주 디자이너와의 소통을 긴밀히 해가면서 일이 그르치지 않게 유지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은 앱 개발이 모두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내 시간이 아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간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외부 업체들이 가져오는 결과물만 받아보던 탓인 듯했다. 약속한 기한이라는 것이 이리 쉽게 어겨질 것이면 계획은 뭐하러 짜는 것인지 궁금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왜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을 무너뜨릴까 봐 그럴 수 없었다.

같은 일이 수 차례 반복되면서 점점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앱 개발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거다, 얼른 출시해서 뒤늦게 문제를 발견하는 것보단 이게 나을 거다, 나름 분투하는 동업자들의 노고를 무시하지 말자,라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회사 휴직기간이 흘러가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며, 가족들이 진척상황을 조심스레 묻는 경우에도 웃으며 잘 되어간다고, 걱정 말라고 초조함을 숨겨야 했다.


이제는 앱이 완성돼 런칭하는 순간이 닿을 수 없는 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요 몇 달 동안 수익이 발생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그려봤고 밤 새 그런 꿈을 꾸면서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살면서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하고 집요하게 원했던 적이 없을 만큼 간절했다.

오늘은 함께 사무실에 있는 프로그래머에게 괜히 말을 걸며 옆에 잠시 앉았다. 두 개의 모니터에 띄워진 정체모를 코딩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하루 종일, 또 밤새 그 블랙홀같이 까맣고 불친절한 화면과 씨름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의 마음이 보인다. 가정이 있는 그도 허리디스크에 고생해가며, 아내와 싸워가며 붙잡고 있는 사업이다. 감히 내가 혼자 동동거리며 보챌 수 있는 사업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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