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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Aug 15. 2020

아이가 처음으로 나를 밀쳐냈다

아이가 달라졌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잠에서 깨어 울었다. 웬만해서는 울지 않고 내 방으로 달려오곤 했었기 때문에 이상하다 싶어 얼른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내가 가도 반기지 않았다. 다가가는 나를 밀어내며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진정된 후에야 꿈에 내가 나왔었다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내용이었나 보다.

그간 아이는 한 번도 나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아이는 나를 반겼고, 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는 한 아이는 언제나 나와 노는 시간을 환영했다. 그랬던 아이가 나를 처음으로 밀쳐냈다. 거짓을 말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전적으로 솔직한 감정에 의해 날 멀리했다.

화를 몇 번 내긴 했었다. 내 감정이 치밀어올라 그런 적도 있었고 아이의 훈육을 위해 화난 것처럼 감정을 꾸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화내는 순간마다 아이 머릿속의 아빠의 이미지는 조금씩 흠집 나고 있겠구나. 평생 100% 깨끗하고 고결하며 친근한 아빠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위로했다. 부모는 친구 같을 수 없다고, 아이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많은 친구들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부모는 부모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나에게 철저히 믿었던 한 존재로부터 작은 배신과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나를 차갑게 흘겨보며 저리 가라고 말했다. 만약 아이가 알고 있는 어휘가 지금보다 복잡했더라면 나는 가라는 말보다 더 가슴 아픈 말을 들었을 거다. 당황해 일단 시키는 대로 뒤로 물러났지만 아이의 화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아이는 나를 밀어내는 순간이 많아질 거다. 아이의 세계는 전에 없이 복잡해질 거고, 그 안에서 아이의 세상을 더 이상 나 혼자 차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다른 가족들과 수많은 친구들, 선생님들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거다. 어느 시점에는 친구들이 차지하는 마음속 파이가 내 그것보다 더 커질 때가 올 거고, 또 나이가 들면 이성친구나 아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마음 밖으로 밀어낼 때도 올 거다.

나약한 아빠의 비약적인 걱정이겠지만, 아이의 첫 밀쳐냄 한 번은 나로 하여금 먼 미래까지 생각하게 했다. 나만의 아이가 아니게 되는 그 언젠가 떠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한 연애는 끝나도 미련이 덜 남는 것처럼 최선을 다한 아이와의 시간은 아이와의 이별을 치졸하지 않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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