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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Oct 15. 2020

순간에 집중하면 행복이 보일지도

오늘은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하루였다. 몸도 찌뿌듯한 게 땅에 달라붙은 듯 무거웠고, 그 느낌을 이기지 못해 쉽게 뭔가를 시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오전 내내 소파에 누워 휴대폰만 쳐다봤고, 미루고 미루다 점심이라도 나가서 먹자는 생각이 들어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오후에도 딱히 뭘 했다기 보단 그냥 뒹굴대다 운동을 나왔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외근 중인 아내를 데리러 가게 돼 얼른 씻고 나왔는데, 아내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며 알아서 오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일도 운동도 오늘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이런 날도 있다. 어떻게 세상 모든 날이 다 효율적이고 만족스럽게 흘러가겠나. 그저 지나가는 삶에서 이런, 저런 날을 마주하면서 살아갈 뿐 아니겠나.

사실 며칠 전부터 인생이 매우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생이란 그저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하루하루 시간을 때울 뿐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든, 사회적으로 성공하든, 명예를 얻든, 예쁘고 잘생기든 결국 다 공평한 죽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일진대, 인생에서 내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것은 뭔가 싶기도 하다. 희망이 없는 삶이 가장 비참하고 권태롭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이 비극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 일지 모르지만, 그런 말은 맞다는 생각은 들지만 현실에 딱히 도움되는 것은 없다.  

삶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고 나니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처럼 쾌락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매 순간의 쾌락을 위해 소비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엔 그 어떤 장기적인 노력도 의미가 없는 느낌이다.

원래 나는 쾌락주의자의 정 반대에 서있던 사람이었던 터라 당장 쾌락주의에 심취한다고 해도 뭐가 쾌락을 가져다주는지 잘 모른다. 섹스나 술, 도박, 마약에 몰두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조금은 건강한 쾌락이라고 여겨지는 운동이나 여행 등도 그 자체로는 즐기지 못한다. 나에게 운동이나 여행은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였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었다. 운동은 더 나은 옷태나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기 위한 희생적인 노력이었으며, 여행은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가족을 만족시키기 위한 의무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곱씹어 본다. 행복한 ‘시절’이라든지 행복한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말 그대로 ‘순간’의 행복만을 떠올려 본다.

새벽에 풀과 나무의 냄새를 머금은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내 숨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 속을 거니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공적으로 발표하고 박수를 받는 순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이를 껴안는 순간, 뻥 뚫린 한 밤중의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며 한강을 바라보는 순간 등이 떠오른다.

행복의 순간을 늘려 인생의 쾌락을 늘리는 것. 순간보다 더 긴 시간은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 없이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 일단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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