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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모험가 May 25. 2021

3. 연애는 용기

가장 좋았던 소개팅, 그리고 실패...

2013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소개팅을 여러 번 했다. 주위에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저렇게 소개팅이 많이 들어왔고 여러 번 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오고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 소개팅할래?”


같은 팀에 동료 한 명이 나한테 또 소개팅을 물어봤다. 사실, 절대로 소개팅을 시켜줄 녀석이 아닌데, 갑작스러운 말에 ‘이 녀석이 웬일이지? 이상한 아이를 소개시켜 줄라고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도 소개팅을 안 할 내가 아니었다.


“당연하지. 감사 감사. 누군데?”

“아 유진(가명)이라고 내 고등학교 친구. 할래?

“응 한다니까. 땡큐!”



첫 번째 만남…


어떻게 하다 보니 셋이 같이 봤다. 여자 둘, 남자 하나.. 뭔가 이상한 조합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장소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직도 한국 지리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홍대였나? 확실한 건 와인바를 갔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 통하고 정말 괜찮았다.


“은숙아 (가명), 너 친구 괜찮다. 그 친구는 어떻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자신감은 없다. 천성이 겁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것도 참 겁이 많다.


“응. 유진이(가명)도 괜찮데. 너희 둘 잘 맞을 것 같아.”




두 번째 만남…


바로 다음 주에 또 셋이서 같이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데 셋이 만나서 같이 영화를 봤다. “베를린”이라는 영화였는데, 하정우와 전지현이 정말 멋있었던 영화.. 하지만 영화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주선자를 빼고 따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세 번째 만남…


당시 나는 막바지 MBA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원서는 다 냈지만 몇몇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미 한 학교에서 합격을 받아놓은 상태였고 또 다른 조그마한 학교에서 인터뷰를 보자고 했다. 워낙 가고 싶었던 학교여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인터뷰를 뒤로하고 미국에 가서 인터뷰를 보기로 결심했다. 명절에 미국을 가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동부에 눈이 많이 내려서 비행기가 결항이 되는 상황이 생겼다. 무슨 생각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명절을 맞아 먼저 연락을 했다.


(카톡)

“구정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명절에는 모하세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에 가야 되는데 비행기가 결항이 됐네요. 쩝..”

“아 그러시구나. 그럼 지금 뭐하세요?”

“뭐 내일 비행기가 안 뜨니까 딱히 없네요. 연휴에 뭐하세요? 시골 가세요?”

“아뇨. 저는 그냥 서울에 있어요.”

“아 그러세요? 우리 그럼 오늘 같이 저녁 하실래요?”

“네 우리 저녁 같이 해요.”


고민 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따로 보고 싶었는데… 당시 아빠가 미쳤다고 했지만, 그때 나에게는 MBA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우장산역이었나?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거기서 나오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벙어리장갑에 목도리를 하고 있던 꾸미지 않은 그 모습은 내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쌈을 먹었고 그리고 맥주집에서 맥주를 먹으면서 계속 얘기했다. 말이 잘 통했고, 너무 좋았다. 그 3-4시간의 기억이 지금 생각만 해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네 번째 만남…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오면서 기내 면세점에서 목걸이도 샀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MBA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순간 알았다.


‘붙었구나. 올해 MBA 가야겠다.’



“E, 미국 여행은 어떠셨어요?”

“아 좋았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간 건데 뭐 이틀 만에 금방 왔어요.”


딱히 MBA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머릿속이 혼란했고 이걸 정리 한 이후에 말하고 싶었다.

사귀자고 말해야 하나? 목걸이도 사 왔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 밸런타인데이라 초콜릿 샀어요. E 줄라고..”

“아 고마워요. 저도 사실 이거 사 왔어요.”

“어, 이거 뭐예요?”

“아, 면세점에서 봤는데 예쁘길래 샀어요. 부담 갖지 마세요. 원래 미국은 밸런타인 때 남자가 여자한테 줘요.”


부담 갖지 말라니… 사귀자고 말해야 되는데 부담 갖지 말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다섯 번… 여섯 번.. 그리고 일곱 번…


“뭐야 그럼 결혼해야 된다는 소리인데, 유진이는 결혼 안 해. 너무 어리잖아.”

“그렇지? 흠…”


딱히 결혼 얘기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주선자는 단호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24살에 미래가 창창한 젊은 친구인데… 사귀지도 않은 그런 남자가 갑자기 MBA 간다고 같이 미국 가자고 그러면 가겠냐…



“E, 뭐해요?”

“저 뭐 이거 저거 하느라 집에 있어요.”

“저번에 저희 집 근처 오셨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E 집 근처로 제가 가보려고요. 저녁 같이 하실래요?”

“아, 제가 오늘 조금 바빠서요. 정신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하실래요?”


우선 머리를 정리해야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결국은 주선자 말처럼 얘기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내 우유부단한 성격과 상황이 겹쳐서 결국 잘 되지 못했다. 연애도 타이밍인데, 내가 타이밍을 놓쳤다. 뭔가 얘기를 하고 싶었을 때는 이미 그분의 마음은 떠난 뒤였다.


사실 이후에도 몇 번 더 봤다. 주선자와 같이도 보고 따로도 봤다. 하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나는 미국을 갔다.




"야, 그때 유진씨는 뭐하냐?"


작년 쯤인가 오랜만에 동료와 연락했을 때 궁금해서 물어봤다.


"응 결혼해서 지금 임신했어. 6개월인가?. 나도 근데 요즘에는 딱히 연락하지는 않아."


뭐 딱히 사귀였던 것도 아니였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잠깐이였지만 정말 좋아했었나보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이 맞으면 용기를 내야 한다. 아직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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