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모험가 Jun 02. 2021

4. 인생은 몰라

내가 석유, 에너지 사업에 있는 이유.

"E, 넌 Natural Resources (자원, 혹은 에너지) 그룹이야."

"Natural Resources는 또 모야? 뭔데 그 그룹은?"


대학원을 막 졸업 한 이후, 내 첫 직장이었던 투자은행에서 3개월 간의 로테이션 이후 내 1 지망은 무조건 TMT 였다. Technology, Media & Telecom...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는 너무 당연히도 구글, 애플 같은 클라이언트와 일 할 수 있는 TMT가 가장 매력적이었고, 한 달 동안 있었던 TMT에서도 나를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Natural Resources 그룹은 너무도 황당했다. 바로 HR로 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Hana (가명), Natural Resources 그룹이라니 무슨 소리야? 나 로테이션도 거기서 안 했어. 나 그게 뭔지도 몰라 거기. 내가 거길 가서 뭐해?"

"Natural Resources 좋잖아 왜 그래? 우리 은행이 거기서 1등인 거 몰라?"

"1등이건 2등이건 거길 누가 갈라고 해? 나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다 안된 거야?"

"... 음...."


황당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다. 그럼 결국 로테이션 동안 있었던, TMT, Healthcare, CPG 세 곳 전부다 내가 아닌 다른 애널리스트를 뽑은 거였다.


점심에 동기를 만나 분노에 가깝게 회사 욕을 하면서 얘기했다.


"야, 나 그만둬야 되냐? Natural Resources는 뭐야. 석유? 화학? 석탄? 장난해? 화학 아니면 나 나중에 한국 돌아가도 갈 회사가 없어."

"E, 화학은 Industrials 그룹에서 할 걸?"

"뭐야, 그럼 화학도 없어? 그럼 진짜 석유 파고 석탄 캐는 것 밖에 없는 거야?"

"음.. 구리도 캘 걸?"

"아놔!! 미친 거 아냐? 내가 거길 가서 뭐해?"


 하지만 차마 그만둘 수는 없었다. 피 말리는 채용을 거쳐서 겨우 한 곳 붙은 거였는데 여길 그만두고 다른 투자은행을 찾기에는 용기도 없었다.



".... Natural Resources는 NAV valuation으로 쓰고, IOCs처럼 여러 비즈니스가 있으면 SOTP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Google, Amazon 같은 tech 회사들을 상대로 일할 줄 알았는데, 이거는 무슨 Schlumberger, Exxon, Shell, Glencore 같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회사들이 클라이언트가 되어 밤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12년 후..)


"...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EV 때문에 transportation fuel에 수요가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하지만, 그렇다 보니 upstream 투자가 너무 적어지고 있어요. 가격 면에서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런데 Green 수소 가격 때문에 쉽지 않아요. 우선 derivative를 이용한 blue ammonia를 co-firing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거길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돼요."


12년이 지난 이후, 아직까지도 나는 이 산업에 있다. 겁이 많아 그만두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팀에서 몇 년 있다 보니 나름 에너지 시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산업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 보면 조금 황당 하지만 웃음도 나는 것 같다.


인생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정말 아무도...



작가의 이전글 3. 연애는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