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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Jan 16. 2020

D-400 | 순간퇴사가 필요해

1부 | 무엇이 우리를 퇴사로 내모는가? - 퇴사하기 좋은 날

-D-400 | 순간퇴사가 필요해


가르치려는 말투론 누구도 가르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마주하면 오히려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반면교사 삼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결과적으론 가르쳤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 <퇴사일지> 중에서 -

야근 야근 또 야근이 계속되는 동안, 건강과 넘치던 의욕도 야금야금 사라져 가고 있다. 급기야 심각한 거북목 증후군에 고개를 좌우로 돌릴 수 없을 만큼 어깨 근육이 굳어버린 나는 몇 개월째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야근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큰 행사를 앞두고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첫 번째이고, 거의 매일 지각하는 지각대장으로 인해 업무 일정이 뒤로 밀리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증가하는 경우가 두 번째.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 '군말 없이 야근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꼰대 김철수가 세 번째 이유다.


[그림4] 번아웃 곰돌이 너의 모습 남일 같지 않구나


#1

1년 전, 옛 동료 A는 감당하지 못할 업무를 산더미처럼 떠안고, 사무실에서 집에서, 그리고 행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일주일째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일을 하고 있었다. 쾌활한 긍정왕이었던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다크서클과 축 처진 어깨, 떡진 머리카락. 행사 지원을 나갔다가 만난 그의 힘없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모든 행사가 종료되고 집에 돌아오는 길, 행사 참관을 마친 김철수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는 현장 운영에 대한 비평을 쏟아냈다. '왜 저렇게 일하냐'라는 비아냥에 화가 났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저러는 것 아닙니까'


#2

매일 점심 먹을 때 즈음 출근해서, 꼭 점심시간 10분 전 기획회의를 여는 김철수에게 물었다. '점심 먹기 직전에 회의를 여는 이유가 있어요?'


그는 '왜! 그러면 안 되냐!'며 되려 화를 낸다.


#3

김철수가 사내 스터디를 하자고 해서 매번 동료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는데, 왜 스터디를 퇴근 시간 이후에 하는 가? 딱히 바쁜 업무 일정도 없는데, 왜?


스터디에서 김철수 차례가 돌아오면, 준비를 못해왔다며 다음 사람에게 미루는 바람에 계속해서 연기되다가 결국 스터디는 없어졌다.


#4

거래처 담당자에게 오늘도 독촉 전화가 온다. 언제 입금되냐고. 회계 담당자의 퇴사 후, 회계 업무도 도맡아 하는 우리의 김철수. 분명 한 달 전, 2주 전, 1주 전 총 3번을 확인했는데, 확인할 때마다 앵무새처럼 '응 입금할게'만 반복할 뿐 기한 안에 처리가 된 꼴을 못 보았다.


아이템 나열식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로 연결되어야 아이디어가 된다. 여기에 '왜' 하려고 하는지가 있어야 설득이 시작된다. - <퇴사일지> 중에서 -


모든 업무의 결재는 물론, 회계처리까지 도맡아 하는 김철수는, 기획회의도 주도한다. 실무현장에서는 절대 뛰지 않지만 회의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아이템을 나열하고, 결정권을 갖고 있으면서 판단을 유보하여 모든 병목현상의 주범이 되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목은 더 좁아져만 갔고 실무진들의 답답함은 날로 늘어만 간다.


[그림5] 야근금지 지랄금지


#5

'내일 오전까지 제출해주세요'


퇴근 30분 전, 김철수가 신입사원들에게 일을 던지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신입사원들은 하루 종일 일이 없어 방황하다 갑자기 무슨 목적인지 모르는 일을 내일 오전까지 던지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6

"철수님, 저희 월급은 언제 들어오나요?"


첫 월급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한 신입사원이 김철수에게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한 마디 '아 맞다!' 몇 년을 함께 일해 오면서 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아 맞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 지각한 김철수를 기다리며 주최사에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그에게 신뢰라는 것이 1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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