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丙申年을 보내고 始發點을 맞다 - 퇴사하기 좋은 날
회사생활은 여전히 여전하다. 힘든 일은 딱히 없고 별로 바쁜 일도 없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미적거리는 것으로 보낸다. 사무실 바닥을 쓸고 주변 정리도 해보고 사내에 새롭게 제안할 거리들도 물색해보았다. 사업 비수기를 틈타 회사 창고를 대대적으로 정리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이후 몇 주간의 창고정리도 끝나자 지독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더 이상 이 생활에 안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회사원으로서의 매너만 지키다간 총기를 잃어만 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고향에서의 어느 날 밤,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일은 할 만하냐?" -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앞에 뭐가 보이냐?"
아버지의 두 번째 질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서울에 돌아온 후, 입사지원 시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를 읽어보았다. 내가 쓴 글 속에 무엇이든 자기주도적으로 일을 벌이고, 동료를 모으고 부단히 움직이던 자신감 넘치는 내가 있었다. 문득 거울 속에 마주친 내 눈빛이 얼마나 남루해졌는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총기를 되찾자. 차라리 내가 절을 차리거나, 어느 절에도 속하지 않는 파계승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