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미 Feb 25. 2020

D-20 | 선택의 순간이 왔다

3부 | 출사표를 던지다 - 퇴사하기 좋은 날

-D-20 |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림21] 익어가는 마음씨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으니 열정이 샘솟는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기준도, 목표도 뚜렷해졌다. 야금야금 내 영혼을 갉아먹던 야근은 그토록 싫어했으면서 퇴근 후 카페에 출근해 쓰는 창업을 위한 제안서는 신이 난다.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지난한 회의를 거칠 필요도 상사의 결재를 받을 필요도 없다. 마이크로 단위로 업무 진행상황을 체크하던 대기업 클라이언트와의 지독했던 추억도 이럴 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키보드 위를 신나게 춤추는 내 손가락이 정겹다. 회사생활이 음역대가 맞지 않는 기성곡을 노래방에서 목청 높여 힘겹게 부르는 것이라면, 창업은 내 기분을 최대한 멋지게 가사로 표현해내고, 가장 좋아하는 코드 구성으로 자작곡을 쓰는 과정이다.


프레젠테이션은 나의 아이디어(what/how)를 파는 자리가 아니라 신념과 확신(why)을 공유하는 자리다 - <기획은 2 형식이다> / 남충식 -


열심히 썼던 제안서 중 2개가 통과되었고, 각각의 PT심사와 심층 면접을 거쳐 주말 창업에 필요한 충분한 사업자금을 확보했다. 온전히 나의 고민과 경험에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즐겁다. 왜 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따로 발표 준비를 안 해도 적절한 단어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단체명이 새겨진 도장을 파고, 단체를 설립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섣불리 사업자를 내지는 않았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회사 사무실 내 자리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 쌓은 경력은 나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고 그동안 고생하며 알게 모르게 체득한 사소한 일머리들이 추진력을 얻기 위한 연료가 되어준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열심히 맡은 바 업무를 다 하고, 남는 시간에는 회사일에도 내 일에도 득이 되는 공부를 한다. 퇴근 후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함께 할 동료를 찾고 그들에게 나의 비전을 공유하며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간다. 어느 순간 나는 아름다운 퇴사보다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


선택의 순간

주말 창업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어린이들과 함께 첫 번째 수업을 마쳤을 무렵, 회사 역시도 주말 일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그것도 연말까지 6개월 이상 진행해야 하는 일이. 나는 내 생활을 유지해주는 안정적인 직장과 하고 싶은 걸 일로 만들어 실행해보려는 실험 사이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선택의 순간이 빨리 다가왔다. 막상 결정의 순간이 오면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퇴사해야 할 이유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전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타향의 월세살이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모든 것이 비용이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계기가 필요하다.


-D-3 | 예상 시나리오


對話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일상생활에서 두 사람이 모여 말로 생각한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한 활동. 그래서 대화를 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주파수를 확인해야 한다. 주파수를 맞출 줄 모르면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가 된다. 엄청난 고문이다. - <퇴사 일지> 중에서 -


주말 창업을 꿈꾸며 보낸 의욕적인 회사생활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회사일과 주말 창업 계획이 겹친 데다 요즘 알 수 없는 이유로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김철수 때문이다.


누군가들의 논쟁에 대해 세세하게 파고들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현상을 바라보면 사실 별것 아닌 것에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쁜 것은 반면교사 삼고, 좋은 것은 본받으면 그만.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취하자. -<퇴사 일지> 중에서 -


우리의 김철수는

업무를 지시하고 보고받고 회계 처리하고 직원들의 휴가처리마저도 관리하는 업무왕이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늘 점심시간 이후에야 출근하고선 조직의 모든 업무 흐름을 딜레이 시킨다. 지각왕이 야근한 직원들의 대체휴무 신청을 이유 없이 반려하고, 직원들의 근태 문제를 논한다. 반려의 이유를 물으니 사전에 공지되지 않아 아무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새로운 규칙을 설명한다. 회의를 하다가 김철수의 의견에 대해 팀원들이 보완책을 제시했는데 갑자기 화를 낸다. 클라이언트와의 업무관계 조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팀원에게 '제눈의 들보를 보라' 갑자기 훈계한다. 계속된 야근으로 피곤한 팀원에게 정반대 방향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차로 태워달라 강요한다. 몇 번의 수정을 거친 시안을 보고 '다 마음에 안 든다' 말을 남기고 의사결정을 무기한 미룬다.


尤而效之 罪又甚焉 우이효지 죄우심언 (남의 잘못을 비난하면서) 같은 짓을 한다면, 그 죄는 더욱 크다 <春秋左氏傳>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고 회사에 대한 마지막 애정을 실천하기로 했다.


예상 시나리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문제 삼을 것이다.

-결정의 권한자가 판단 기준조차 독점할 것이다.

 

위 예상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남을 수 있고, 그대로 흘러간다면 당장 떠나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D-70 | 주말 창업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